상반되는 견해를 모두 수용하는 회의주의자 
 

경이로운 회의주의에 매료된 사람은 티몬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아르케실라우스Arcesilaus였으며 그는 늙은이로 기원전 240년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융통성이 있었던 학자로 어떤 의미에서 회의주의를 가르쳤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가 우리에게 가르친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알면서도 모른다고 내숭을 떤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사람들은 종말로 그가 모른다고 한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더구나 많은 그의 논쟁이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지식에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플라톤의 저서 <파르메니데스> 후반의 경우 그는 앞 뒤 없는 전차와도 같은 논증을 한참 하다가 궁여지책으로 양편의 상반되는 견해 모두를 수용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우리나라 정승 횡희의 에피소드가 있다.
정승은 재판에서 원고의 말을 듣더니 그가 옳다고 말했다.
이튿날 피고가 와서 변명하자 그가 옳다고 말했다.
이를 보다 못해 아내가 두 사람 중 하나만 옳아야지 어떻게 두 사람 모두 옳을 수가 있겠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랬더니 황희는 아내에게 "당신 말도 옳소"라고 말했다.

플라톤의 상반되는 양편의 견해 수용은 회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젊은이들이 아르케실라우스의 가르침에 감동한 까닭은 자신들의 불완전한 지식에 회의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르케실라우스는 어떠한 논제들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제자들이 제시하는 어떠한 논제들에 대해서도 타당성 있는 이유를 들어 논박할 줄 알았다.
그는 어떤 때는 두 개의 모순되는 명제들을 갖고 논쟁하는 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면서 두 개의 명제를 설득력있는 방법으로 진전시킬 줄 알았다.
그는 요즘 유능하다는 변호사와도 같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죄인도 무죄하다고 논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스승으로부터 배울 것이 별로 없었고 다만 그의 영리함과 진리에 대한 무관심만을 배울 수 있었다.
아르케실라우스의 영향이 컸으므로 아카데미는 약 2백 년 동안 회의주의에 빠지고 말았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제자 카르네데스Carneades(기원전 180~110)가 아카데미의 책임자가 된 후로는 더욱 더 회의주의가 아카데미에 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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