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관식이 금강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금강산 시리즈는 변관식의 평생 작업 중 가장 탁월하며 다양한 구도의 변화와 바위의 괴량감은 빼어난다.
그가 금강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59년 원각사 극장 벽화로 그린 <내금강 지주담> 이후이다.
이 작품이 불에 타 사라지자 그가 통곡했다는 데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이 된다.
그의 기량은 같은 해에 그린 <외금강 삼선암 추색 外金剛三仙巖秋色>에서 볼 수 있는데, 금강산 시리즈 중 걸작으로 화면 왼편에 수직으로 한 가늘고 긴 삼선암 봉우리의 구도는 역동적이며 하늘의 흰 여백과 심한 대비를 이룬다.
실경을 묘사한 것이지만 자연의 놀라운 힘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하늘을 향해 뻗은 바위 아래의 계곡을 모티프로 삼았다.
이 작품은 이상향의 산수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재감이 있어 관람자에게 한층 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주는데 철저한 사생과 강렬한 표현적 구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가 절정기에 사용한 적묵법은 재질감의 효과를 위한 것으로 농담을 달리 하는 먹을 겹쳐 긋고 쌓아올린 적묵법과 먹이 뭉쳐진 부분에 다시 진한 선을 긋고 점을 찍어서 깨는 파선법을 사용해 강렬한 표현주의 그림이 되게 했다.
이후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은 다양한 소재로 확대되어 1960년에 <내금강 진주담內金剛眞珠潭>과 <외금강 구룡춘색 外金剛九龍春色>, 1963년에 <외금강 옥류천 外金剛玉流泉>으로 이어지면서 절정에 다달았다.
<외금강 구룡춘색>은 1960년 가을에 그린 것으로 전 해에 그린 <외금강 삼선암 추색>과 이로부터 3년 후에 그린 <외금강 옥류천>과 비교할 때 먹의 풀림이 그 중간에 위치하는 특색을 갖추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외금강의 절경을 묘사한 것으로 <외금강 삼선암 추색>은 구도와 먹의 사용이 매우 강하고, <외금강 옥류천>은 강약의 변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데 비해 이 작품은 꽉 찬 구도의 짜임새와 힘찬 붓놀림에서 그 특징이 더욱 살아났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새로운 기법 중묵법을 사용했다. 적묵과 파선에 태점을 사용하여 바위와 토파 부분에 먹을 중첩시켜 칠해지지 않은 부분과 강한 대비가 되게 했으므로 깊이를 느끼게 하는 특유의 적묵법이 되었다.
한편 그가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온 정형산수는 두 가지 형식을 혼용하는 것으로 특정한 풍경을 사생하면서 이를 전통 관념 산수의 형식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부항춘일>의 경우는 왼편에 부산항의 실경을 살리면서 오른편에 관념 산수의 요소를 가미하여 독특한 멋을 낸 작품이다.
이런 실경과 관념 산수의 혼용이 부산 항구 같은 특정한 실경이 아니라 평범한 산촌의 풍경일 경우 <촉촉 청산>으로 나타난다.
그의 정형산수는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는데 화면 중앙에 바위언덕이 자리 잡고 거기에는 운치 있는 정자와 소나무가 있으며, 한쪽에는 강이 흐르고 한편으로는 구불구불 시골길이 뻗어간다.
거기에 복숭아꽃이 만발하며 노란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두루마기 입은 노인이 바삐 걸어가는 것이 그의 정형산수이다.
화제는 다르지만 서정적인 당시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의 애송시 중 하나는 이태백의 <산중문답>으로 속세를 떠나 사는 선인에게 왜 깊은 산 속에서 사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않고 미소만 지을 뿐이라는 칠언시이다.
그는 탈속의 경지를 노래한 중국 시구를 쓸쓸한 산야가 펼쳐진 우리나라의 정경을 그린 그림에 화제로 사용했다.
이런 부조화가 그의 회화의 한계였으며 현실에 대한 투철한 수용이 결여된 실경은 가상적인 풍경일 뿐이다.
1965년 이후 그의 그림은 상투적이 되었다. 그가 태점과 중묵의 기법을 구사하면서 보여준 산수화는 금강산이든 산천의 정형산수이든 현장감보다는 선, 먹, 여백의 조형적 조화를 추구하는 데만 그쳤다.
그는 1976년 2월 17일 서울 자택에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