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산수화의 4대가
김은호는 동양화 화단에서 독보적인 존재였고 근대 산수화의 4대가로 의재 허백련(1891~1977),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정 변관식(1899~1976), 심산 노수현(1899~1978)이 있다.
네 사람 모두 189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에 타계했으며 근대 동향화의 첫 세대이다.
이들 모두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의 제자이며 후배들로서 당시 교본 역할을 한 『개자원화보』 등을 통해 기초 훈련을 받았지만 사생을 통한 근대적인 시각으로 작업했다.
이들이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였으며 이 시기에 화단에는 근대적인 전람회가 생겨났는데, 협전, 선전 등을 비롯하여 작품을 공개적으로 전시했다.
신문과 잡지는 전시 내용을 보도했고 작품에 대한 평도 실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동양화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전통을 따른 산수의 경향이었고,
둘째는 실경을 모티프로 삼은 새로운 모색이었으며,
셋째는 주로 채색을 통해 현실적 모티프에 치중하는 경향이었다.
전통을 따른 화가들은 허백련, 정학수, 박승무, 지성채, 노수현 등이다.
노수현은 초기에 현실 소재를 그리다가 관념 산수에 경도되었다.
사경 산수에 매진한 화가들은 이상범, 변관식, 이용우, 배렴 등이었고 채색화를 주로 그린 화가들은 김은호, 김경원, 이영일, 이한복, 최우석(1899~1965), 정찬영 등이었다.
이한복은 1928년에 동·서양화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양화는 동양화의 장처를 취하고 동양화는 서양화의 정처를 취하여 지금은 다만 취급하는 재료만 다를 뿐이요, 형상하는 법과 표현하는 법이 같아진 것이 많다.
이것이 요즘 동서 회화의 현상이다.
다만 다 각각 달리 보고 달리 취할 특징은 있을 것이다.”
1923년의 동연사를 중심으로 이상범, 변관식, 노수현, 묵로 이용우 등은 고답적인 전통 양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평범한 자연 풍경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상상에 의한 혹은 관념적인 산수가 아닌 눈으로 직접 보는 주변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이들은 산과 절을 찾아다니며 맹렬히 스케치했다.
이들 모두 기존의 양식을 버리고 자신들의 고유한 양식을 발견하려고 노력했으며 1923년을 기점으로 전시출품작에서 이들의 노력이 시각적으로 나타났다.
이용우는 최연소의 나이로 서화미술회에 입학하고 오일영과 함께 창덕궁 대조전의 벽화를 제작하는 등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지만 동료들에 비해 일찍 타계함으로써 자신의 양식을 진전시키지 못했다.
이용우는 유현한 산수에 바탕을 두면서도 몽환적인 설정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으며 형식을 파괴해나가는 그의 대담한 실험은 고루한 관념에 짓눌려 있던 동양화 화단에 충격을 주었다.
노수현은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뛰어났으며 청록산수풍의 서구적 투시법과 원근법을 받아들여 1940년대까지 현실감 있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 후 관념화의 경향을 나타내며 암석의 골격미를 정형화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실경을 그리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이상향의 산수를 그렸으며 특히 암벽의 변형에 관심이 많아 유현한 산수를 그렸다.
이용우와 노수현에 비해 이상범과 변관식은 좀 더 확고한 자신들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실경에 충실했다.
이상범은 작은 야산과 시골사람의 부지런한 삶 등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평범한 장면과 모습을 모티프로 삼았으며 변관식은 금강산과 같은 절경을 개성적인 구도와 묵법으로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은 화본 위주로 관념적 산수화를 그린 안중식과 조석진을 뛰어넘어 근대 동양화의 길을 연 선구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스승 안중식과 조석진으로부터 배운 전통 화법과 준법을 기초로 하여 자신들의 양식을 창안해냈는데 이상범은 부벽준과 절대준의 배합으로 독특한 준법 청전체를, 변관식은 특유의 적묵법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1960년을 전후하여 직업에 절정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