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동양화

1920년대 근대 동양화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 화가는 오창석吳昌碩과 제백석霽白石이었고 일본 화가로는 다께우찌 세이호竹內栖鳳와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이었다.
오창석은 여든의 고령이었지만 패기 넘치는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하고 있었으며 명성을 국내외에 크게 떨치고 있었다.
전통양식을 무시한 세찬 선과 현란한 채묵을 구사해 쏟아내는 신선한 작품은 매우 진보적이었으며 회화뿐 아니라 전각篆刻의 도법장법刀法章法이 국내외 젊은 동양화가들에게 입신의 경지로 보여졌고, 구태 속에서 허덕이던 많은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표상이 되었다.

제백석은 오창석과 연령차는 있지만 나란히 쌍벽을 우리는 중국화의 거목이었다.
그는 오창석과는 달리 수묵 중심의 소박한 필치로 풍자와 은유가 담긴 화조 어해를 즐겨 그려 구수한 서민적 정취를 풍겼으며 97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대단히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수많은 제자를 거느렸다.
공산정권 때는 동향관계인 모택동 주석의 특별한 예우를 받아 만년에 부귀를 누렸다.

일본의 다께우찌 세이호와 요코야마 다이칸은 만년에 예술과 명성을 겸비한 일본 화단의 양대 거목이었다.
다께우찌는 관서, 요코야마는 관동 화파의 영수로 군림하면서 동경을 거점으로 한 관동파와 경도를 중심으로 한 관서파를 이루고 제국미술원을 둘러싸고 쟁패와 알력을 계속했다.
다께우찌는 북종화적 골격 위에 진보적인 참신한 구도와 세련된 필치도 독창적인 화풍을 창안해냈다.
당시 일본 화단의 일반적인 경향은 일본화 특유의 생경한 구도와 변화 없는 선, 서양화적인 진채를 사용하는 사실 위주였지만 다께우찌의 작품에서는 간명직절簡明直截, 군더더기가 없는 명쾌한 표현으로 자연에 접근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젊은 동양화가들을 사로잡았다.

요코야마는 수묵 위주의 산수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나화풍의 산수화도 아니고 일본식 신나화도 아닌 독창적인 풍경화였다.
수묵이 번져서 운연雲煙 경계를 이루는 식의 그의 작품은 신중하고 근엄한 그리고 품격 있는 화경을 펼쳐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그러나 일반 관람자와 신경향을 따르는 젊은이들에게는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새로운 화화 양식에 관한 정보를 얻기에는 중국보다는 일본을 통하기가 훨씬 쉬웠으며 일본 화단 소식에 익숙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