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 중에서 
 
환상과 미적 지각

르네상스 때 와서 미술에 대한 인식이 한층 고양되었는데, 이는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네오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피치노에 의해서였다.
그가 행한 플라톤의 저작에 대한 주석과 플로티노스의 번역으로 해서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의 연관이 회복되었으며 이는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성과있는 일이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피치노의 영향을 받아 플라톤의 저작 번역을 마친 후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를 번역했다.

피치노는 상상력을 감각에 의한 표현을 조화시키는 능력으로 이해하고 환상Phantasie을 미적 지각의 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으로 간주했다.
사람이 묵상하는 가운데 그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플라톤이 말하는 형상들의 순수한 이성적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이런 내적 집중이 예술적 창조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때 영혼이 미를 체험하게 되며 이는 미가 낮은 수준의 감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고, 듣고, 생각하는 지성적인 능력에 의해 포착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된다.
피치노에 의해 미술은 매우 고상한 예술로 격상되었다.

피렌체에서 의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그곳과 피사에서 의학과 철학을 수학한 피치노는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1389-1464)의 후원 하에 설립된 플라톤 아카데미Platon-Akademie의 학장이 되었다.
이 아카데미는 플라톤에게 바쳐진 학문의 전당으로 고대 플라톤주의와 중세 카톨릭 신앙을 철학의 범주에서 새롭게 종합하여 당대의 철학적 사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저작을 라틴어로 번역한 피치노는 플라톤의 학설과 카톨릭의 신학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354-430)의 저서들을 읽는 가운데 플라톤의 철학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가 영향력있는 플라톤의 『향연』의 주석을 쓴 것은 1469년이었다.

피치노는 『플라톤의 신학, 영혼들의 불멸성에 관하여 Theologia Platonica de Immortalitate Animarum』의 집필을 1469년에 마치고 그후 좀더 보완하여 1484년에 처음 출간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과 피타고라스의 거의 종교적인 신념인 영혼의 불멸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저서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플라톤 철학과 카톨릭 신학의 일치에 촛점이 맞추어졌다.
영혼의 불멸에 대한 그의 논증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 및 그 밖의 신플라톤주의자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한데 섞인 것이었다.
그는 플로티노스에 관한 번역과 주석을 1484년에 쓰기 시작하여 1492년에 발간했다.
피치노는 영혼이야말로 신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진정한 매개체로서 상위의 존재들과 하위의 존재들 사이 중간에 있고 상위와 하위의 일부 속성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이 『향연』에서 언급한 대로 에로스 혹은 사랑을 모든 사물을 한 데 묶는 행위적인 힘으로 받아들인 그는 인간의 영혼이 그것의 사고와 사랑을 상위의 사물들로부터 하위의 사물들에 이르기까지 만물에 확장한다고 주장했는데, 영혼은 정녕 만물의 중심이었다.

자연의 모든 경이로운 사건들 가운데 영혼이 가장 위대한 점은 만물을 혼용하고, 만물의 중심이며, 만물의 힘들을 지녔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적 체험을 중시한 그의 사상은 16세기에 매우 영향력이 컸다.
그의 사상은 네오플라톤주의뿐 아니라 중세의 신비사상과도 더러 관련이 있다.
사유를 통해 영혼이 더욱 심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사유의 삶이 영혼으로 하여금 항상 더 고상한 수준의 진리와 존재로 상승하게 하며, 종국에는 일시적으로 신의 비전과 지식 안에서 절정에 달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의 상승이란 신비주의에서 절대존재와 일체를 이루는 것과 다르지 않다.
플로티노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런 최상의 체험은 현세에서 가능하며 최소한 소수 특별한 자들에게 일어난다고 했는데, 자신도 그런 체험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