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건축 이해하기


이탈리아 건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눠서 이해할 수 있다.

1. 기원전 1세기로부터 4세기까지 약 사백 년 동안에 걸친 로마제국 시기의 건축양식으로 주로 그리스의 고전 양식을 모방했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를 속국으로 삼은 로마는 자연히 그리스 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로마의 많은 건축물이 그리스인의 손으로 건립되었다.
이 양식은 로마인에게 규범이 되었지만 그리스의 도시국가라는 것이 오늘 날 조그만 도시나 커다란 마을보다 규모가 작았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되었으므로 양식의 문제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생겼으며 보다 큰 규모로 나타났다.
집들도 대규모로 지어야 했고, 시장도 커야 했으며, 대중이 모여서 즐기는 목욕탕이나 경기장의 규모도 매우 커야 했다.
건축가와 공학가들의 역할이 중요했고 그들은 도시화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건축물을 설계하고 완공해야 했다.
로마제국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부터(기원전 27년) 로마는 황제의 도시로서 빠르게 성장했다.
아우구스투는 말했다.
“나는 벽돌로 된 도시 로마를 발견했고 이를 대리석의 도시로 만들었다.”
많은 건축물이 대리석으로 건립되어 아름다웠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시기에 건립된 건축물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79년 베수비우스Vesuvius 산의 분화로 용암으로 덮였던 폼페이가 발굴되자 당시 로마제국의 건축 양식과 규모가 드러났다.
극장, 바실리카, 사원, 분수, 성소, 교량, 목욕탕, 고기시장 등의 규모와 개인 저택의 경우 아무 많은 방이 있었다.
로마제국 시대 건물의 특징은 아치형 문이다.

그리스 양식의 특징은 건물이 수직과 수평에 근거하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한계가 있었는데, 기둥과 기둥 사이의 최대 간격이 5미터에서 6미터 사이였다.
기둥이 무게를 지탱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므로 2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리스 도시에서는 그리스 양식의 작은 건물이 문제가 없었지만 도시가 매우 확대된 후에는 건물이 높아져야 했고 커져야 했으므로 양식의 문제를 보완해야 했다.
그래서 해결한 것이 그리스인의 기둥에 둥근 아치를 올려놓음으로써 더욱 더 높은 건물을 건립할 수 있었다.
  

로마인은 다섯 종류의 기둥을 사용했는데, 셋은 그리스 양식으로 도리안Doric, 아이오니안Ionic, 코린티안Corinthian 양식이고 나머지 둘은 로마인의 양식으로 토스카니안Tuscan과 혼성Composite이다.
코스카니안 양식은 도리안 양식을 좀더 단순화시킨 것이고 혼성은 코린티안 양식을 좀더 화려하게 한 것이다.
로마인은 단층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때 맨 아래층은 도리안 기둥을, 이층은 아이오니안 기둥을, 그 윗층에는 코린티안 기둥을 사용했다.
문과 창문은 직사각형으로 했으며 틀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장식했다.
문의 경우 인체의 크기에 맞게 했고 문 양쪽에는 기둥을 세우고 문 위를 청동으로 격자 창살문을 만들어 장식했다.
건축 재료로는 벽돌, 타일, 시멘트, 콘크리트, 쇠를 사용했다.
로마인은 일찍이 기원전 2세기에 콘크리트를 발전시켜 매우 단단하게 사용했으며 이 재료는 다루기 쉽고 경제적이라서 이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외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콘크리트에 돌, 플래스터, 치장 벽토stucco, 대리석 등을 붙여 사용했다.
19세기에 스틸이 재료로 사용되기 전까지만 해도 로마인은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둥근 천장이나 지붕을 제작했는데 지름이 50미터 이상되는 커다란 지붕도 제작했다.

2. 로마네스크 양식Romanesque Style은 19세기에 생긴 말로 11~12세기의 건축물을 가리켜서 사용되었고 이 말의 뜻은 ‘로마인 양식’이다.
로마제국이 붕괴된 후 소위 말하는 어두운 시기 중세가 오래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에 건축에서는 조금밖에 진전이 없었다.
11세기의 건축가들은 건축의 이상을 고대 로마 건축물에서 찾았으며 여기에 새로운 양식을 보탰는데 그들은 기독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요새화한 성이 일부 있고 대부분은 교회이다.
이 양식의 특징은 문, 창문, 아케이드, 둥근 천장에서 발견되는 둥근 아치rounded arch이다.
이전에는 교회의 천장이 나무였는데, 촛불과 횃불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화재의 위험이 있어 불이 나는 일이 잦았다.
해서 천장을 돌로 제작하게 되었고 11세기에 와서는 돌을 주로 사용했다.
무거운 돌 천장을 올려놓게 되니 자연히 내부의 벽을 튼튼하게 해서 천장의 중량을 떠받칠 수 있도록 했다.
부축벽(혹은 버팀벽buttress)을 벽에 부착해 누르는 힘을 떠받치게 했다.
문은 깊게 만들면서 양쪽 기둥이 움푹 들어가게 했고 두 기둥 위에 반원형의 아치를 만들어 장식했다.
문 바로 위에는 수평으로 대들보를 놓았다.
대들보와 아치 사이 반원면을 팀파눔tympanum이라 하고 여기에 장식하는데, 성서적 주제를 장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문의 깊이를 두터운 벽으로 하면서 6미터가 더 되게 하기도 했다.
문은 쇠나 청동으로 제작했다.
이에 비하면 창문은 비교적 작고 가늘었다.
창문이 크게 보이는 이유는 기둥과 아치 그리고 여기에 장식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3. 르네상스 양식은 15~16세기에 생겨난 양식으로 15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까지도 알려졌다.
르네상스는 고전 특히 그리스에 관한 관심으로 촉발된 지성적 운동으로 그리스 문화에 관해 알지 못하면 지성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건축에 있어서의 르네상스 양식은 로마제국 시대의 건축 이론과 실상을 아는 데서 출발했다.
15세기 초 열 권에 달하는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저서가 발견되었는데, 건축가이면서 공학가인 그는 황제 아우구스투스 하에 활동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황제에게 바쳤다.
그의 저서는 로마 건축의 다양한 양식에 관해 소상하게 기술되어 있었으며 정확한 비례와 지침들에 관해 적어놓았다.
많은 르네상스 건축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탈리아 여러 도시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고대 로마 건축을 베우기 위해 로마로 왔는데, 대부분의 고대 로마 건축물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건축적 드로잉이 있었으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르네상스 건축은 고대 로마 건축을 모방한 것이 아니었다.
천 년 이상 오래된 건축 양식은 르네상스인들에게 적합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트루비우스가 언급한 세부 사항들이 참조되었으며 그것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맞게 조절되고 적용되었다.
가장 두드러지게 전수된 것이 로마 아치, 둥근 천장, 박공gable, 그리고 다섯 종류의 기둥이었다.

르네상스 건축을 두 시기로 나누면 15세기의 초기 르네상스와 16세기 성기 르네상스이다. 초기 르네상스에서는 로마제국 양식이 건물의 장식에서 주로 나타났으며 성기 르네상스에서는 장식뿐 아니라 건물의 구조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르네상스 건축은 주로 고전적 모습을 띠었고 반타원형 지붕을 사용했다.
가장 특기할 만한 건축물로는 시청, 야외 저택, 교회 등이었다.

중세의 성은 요새로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었지만 르네상스 궁전은 이와는 달리 거주지이면서 놀이를 할 수 있게 건립되었다.
그리고 저장실과 사무실을 갖추었으며 성벽 파괴용 무기나 활잡이들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둑의 침입이나 성난 폭도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층 창문을 작게 만들고 격자로 된 쇠창살을 부착했다.
쇠창살은 대게 로마 모티프로 제작되었다.
이 층 이상의 창문들은 훨씬 크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건물 아래층 외관은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돌을 건목 다듬어 돌벽을 확장했고 일부 궁전은 외관 전체를 돌로 쌓았지만 더러는 모퉁이 끝부분만 돌을 건목 다듬고 나머지는 시멘트로 벽을 만들었다.
많은 초기 르네상스 창문들은 돌을 건목 다듬고 하나의 기둥으로 창문을 둘로 나눴다.
나중에는 직사각형으로 달라졌으며 가장자리를 틀로 위를 박공으로 장식했다.
또 다른 창문의 유형으로는 직사각형에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수평부entablature 위를 반타원형 박공으로 장식했다.
문은 양쪽 기둥 위에 수평부로 하고 박공의 장식을 그 위에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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