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와 마티스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앙리 루소Henri Rousseau(1844~1910) 는 파리에서 하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1871년에 파리 세관의 세금징수원이 되었다.
그를 ‘세관원 루소’로 부르는 것인 이런 이유에서이다.
1885년에 퇴직한 후 바이올린 수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1886년 시냐크 등의 소개로 독립미술가협회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살롱 쟁데팡당에 출품했다.
루소의 그림은 나이브 아트 특유의 극도의 섬세한 묘사 외에도 솔직한 시각과 신선한 발상, 시적 표현 등으로 20세기의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나이브 아트naive art란 전통적인 기법과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예술가들이 제작한 작품을 말하며 소박파素朴派라고도 한다.
나이브 아트가 20세기에 유행처럼 확산된 것은 새로운 현상이지만 이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루소를 나이브 아트의 선조라 할 수 있다.
루소와 고갱과 마찬가지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도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고향 생캉탱으로 내려와 법률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하다가 1890년에 그림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인상주의 양식으로 그리면서 르누아르 양식의 광채와 엄격한 고전주의적 구도를 결합했다.
고갱, 반 고흐, 세잔의 작품을 접하면서 마티스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1899년 카미유 피사로의 권유로 런던을 방문하여 터너의 작품을 연구했다.
그는 1903년 살롱 도톤의 창설에 참여했고, 1905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살롱 도톤전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비평가 루이 보셀이 그들을 ‘야수들 les fauves’이라고 불렀다.
이로써 20세기 미술에서 최초의 중요한 사조인 야수주의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