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이 시기 뒤샹은 건강이 좋지 않아
뒤샹은 7월 어느 날 마르세이유의 카페에서 에른스트, 페기, 페기의 전 남편 로런스 배일, 그리고 배일의 아내 케이 보일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이 시기에 배일과 케이의 관계는 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던 오스트리아인 가정교사와 케이가 정사를 즐기다 배일에게 들킨 것이었다.
결국 케이는 배일을 버리고 가정교사와 결혼했다.
케이는 회상했다.
전 마르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어요. 어리석게도 마르셀과 45분 동안의 대화를 즐기기 위해 그곳에 갔지요.
헌데 로런스는 말도 없이 술만 마시더니 느닷없이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대리석을 집어 들고 그것으로 내 머리를 치기 시작했어요.
마르셀이 잽싸게 로런스와 저 사이로 몸을 밀고 들어와 로런스를 붙잡았지요.
그러는 동안 전 카페 밖으로 달아났어요.
어두운 거리를 눈물로 범벅이 되어 뛰었고, 마르셀이 저의 뒤를 따라서 뛰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로런스가 그의 뒤를 또한 열심히 따라오면서 두 사람이 뭐라고 소리를 쳤어요.
마르셀은 “어디 어디에 있는 호텔에 있을 것이니 그리로 와요. 내가 당신을 보살펴주겠오”라고 소리쳤고, 로런스는 “그년이 네게로 가면 난 너희들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답니다.
전 거리의 모퉁이에 멈추어 서서 “마르셀, 전 저 사람에게 할 말이 있어요”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전 로런스와 호텔로 가서 밤새 대화했지요.
전 그 사람에게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설명했고, 그 사람은 차분해졌어요.
로런스에게는 항상 양면성이 있었는데 하나는 과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점이에요.
나중에 저와 마르셀이 그날의 일에 관해 대화할 때 그는 자신이 어떻게 그런 용기를 가지고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그렇게 용기 있는 일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했어요.
뒤샹은 그레노블로 가서 그곳에 있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로세를 만났으며, 스위스 국경을 넘어 제네바로 가서 자신에게 빚진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았고, 체스를 두었다.
로세가 회상했다.
“어린아이에게 우유가 필요하듯 마르셀에게는 훌륭한 체스 게임이 필요했다.
… 그는 카페에 가서 가장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을 찾았다.
그는 체스를 두는 곳으로 가서 말없이 관망하다가 게임이 끝나면 이긴 사람에게 “저와 두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고 묻곤 했다.”
당시 로세의 수입은 썩 괜찮았다.
그는 뒤샹의 <상자>를 4천 프랑에 구입했으며, 3만 프랑을 그에게 꾸어준 적도 있었고, 몇 달 후 2만 프랑을 다시 꾸어주었다.
뒤샹은 꾼 돈을 갚았다.
이 시기 뒤샹은 건강이 좋지 않아 몸무게가 줄고 시력도 악화되었다.
뒤샹은 1942년 3월에야 미국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5월 14일에 마르세이유를 떠나 작은 기선으로 카사블랑카로 갔는데 운이 좋게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모로코에서 18일을 보낸 후 6월 7일 뉴욕으로 가는 포르투칼 배에 승선했는데 배는 버뮤다에 한 주 정박할 예정이었다.
포르투칼은 독일과 미국으로부터 중립국 대우를 받았으므로 선내가 밝았고 잠수함의 공격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뒤샹은 그때가 열세 번째로 대서양을 건넌 것이었다면서 “여태까지의 여행들 가운데 가장 쾌적한 여행이었다.
모든 불이 켜졌으며, 우리는 매일 밤 갑판 위에서 춤을 추었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