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나폴리 공화국
안주가의 나폴리 왕 로벨트가 1343년에 사망하자 그의 질녀 조반나가 대를 이어 옥좌에 오른 후 40년 동안 여왕으로 군림했으며 이때 나폴리 왕국은 크게 퇴보했다.
그녀가 16살 때 백부인 왕은 항가리의 안드레아 공작을 사위로 삼았다.
안드레아 공작은 처음부터 조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밤이면 침실에 들이지 않고 문을 잠가버렸다.
이에 여왕은 매일 정부를 갈아들이며 음란한 행위를 일 삼았다.
그녀는 잘 생기고 건장한 호위병을 침실로 끌여들여 섹스를 한 후 살해하여 침실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몰래 시신을 버렸다.
안드레아 공작은 아내의 부정을 눈감아주는 한편 시녀들과 놀아났다.
여왕은 이를 구실로 남편을 교살시켰는데 질투 때문에 죽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나폴리 시민들은 분노하며 여왕이 암살의 장본인임을 알면서도 공작을 살해한 범인을 색출하여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여왕은 달란트의 공작 루이지와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여왕은 하수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극형에 처하고 얼마 후 사내아이를 출생하여 교황으로 하여금 세례를 베풀게 했다.
한편 항가리의 왕 루이스는 동생 안드레아 공작의 암살을 전해 듣고 복수하기 위해 나폴리를 공격했다.
항가리 대군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나폴리로 몰려왔지만 여왕은 이미 도망쳐버린 후였다.
그들은 약탈을 자행하여 시민의 재난은 그칠 줄 몰랐는데 마침 페스트가 발생하여 항가리 군대는 황급히 철퇴하였다.
그동안 조반나는 달란트 공작과 결혼했으며 항가리 군대의 철퇴 소식을 듣고 남편과 같이 나폴리로 돌아왔다.
몇 해 되지 않아 달란트 공작은 아내의 정력을 감당하지 못해 죽었다.
여왕은 이 기회를 이용해 마욜카 공작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는 미모에 양기에 가득 찬 힘 센 바람둥이 청년으로 생각되었지만 여왕의 정력을 감당치 못하고 7년 만에 죽었다.
만족을 모르는 여왕은 갱년기를 넘은 나이였지만 이번에는 부란슈비크의 후작 오토를 남편으로 맞았다.
후작은 전 남편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여왕의 침실을 멀리 했다.
이를 두고 여왕은 정부를 얼마든지 가져도 좋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는 정부를 번번이 갈았다.
그러자 시민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음란이 나폴리의 풍조였더라도 시민들은 여왕의 잔혹성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칼로가 1382년에 구데타를 일으켜 여왕을 교살하고 왕위에 오르자 시민들은 기쁨으로 들끓었다.
칼로가 1386년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라디스라오가 대를 이어 28년 동안 왕국을 통치했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여동생 조반나가 여왕이 되어 통치했으며 동명의 이 여왕은 음란함을 이어받았다.
여왕에 즉위한 조반니 말카와 결혼했는데, 말카는 아내에게 통치를 맡기지 않으려고 여왕을 방에 가두고 수년 동안 포로 취급을 했다.
시민들은 여왕의 불행한 처지에 동정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그녀의 권력을 회복시켰으므로 여왕은 겨우 쇠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자유로운 몸이 되자 여왕은 세르잔니라는 이름의 미남을 가까이 했으며 그는 여왕의 가장 측근으로 국사를 좌우했다.
세르잔니는 나폴리와 시치리아를 통합하려는 꿈을 갖고 시치라아 왕 아르폰소를 여왕의 양자로 삼아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으나 안주가의 반대에 봉착하자 마음을 바꿔 아라공가와의 양자 입적을 취소했다.
세르잔니가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자 중신들뿐 아니라 여왕조차 그에게 경계심을 품었으며 이윽고 조반나는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1432년 8월 모든 사람이 축제에 들떴을 때 왕궁에서 그를 모살했다.
3년 후 조반나 여왕도 죽고 안주가의 레나트가 왕위에 올랐다.
이에 시치리아 왕 아르폰소는 군대를 이끌고 나폴리를 침공한 후 레나트를 쫓아내고 왕국을 손에 넣고 이탈리아 남쪽 반도와 시치리아 섬을 재통일했다.
아르폰소 이후 아라공가의 지배는 1501년까지 지속되었다.
나폴리 시민들은 안주가의 역대 왕들을 사랑했고 특히 최후의 여왕에게는 자식이 어머니를 의지하듯 친애의 정을 주었다.
아라공가는 외국인이었으므로 나폴리 시민들은 애정을 느끼지 못했으며 아르폰소 왕 자신도 외래의 정복자라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광대한 영토의 지배자로서 나폴리 왕국을 힘으로 다스리겠다는 점을 시민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했다.
그는 과거 왕들이 본토 호족들에게 준 관직을 아라공 사람과 자기 측근들에게 주었는데, 그들은 오만하고 악습과 전제로서 주민들의 미움을 샀고 따라서 왕도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아르폰소는 신중하고 현명한 명군으로 나폴리를 호화롭고 능률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낡고 더러운 옛시가를 헐어버리고 일류 건축가를 초빙해 신시가를 건설하고 유명한 조각가와 화가들에게 장식을 맡겼다.
아르폰소 왕은 축제를 좋아했으므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나폴리 축제를 현란하게 만들었다.
그는 문화를 존중했으며 작가, 철학자, 시인, 예술가들을 비호했다.
아르폰소 왕은 정치에 능했으므로 교황청과 화해가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