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만 레이는 나치가 점령한 파리를 빠져나오느라


히틀러의 군대가 1939년 9월 폴란드로 진군할 때 뒤샹은 메리와 함께 프랑스 남쪽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뒤샹은 캐서린에게 보낸 편지에 “올 것이 온 것이오.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우리가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소?”라고 적었다.
두 사람은 12월 중순에 파리로 돌아왔다.
페기가 두 사람의 집에 묵으면서 뒤샹의 시간을 많이 빼앗았는데, 그녀는 6월에 런던에 개업한 화랑을 폐업했다.
페기는 화랑보다는 뮤지엄을 개관할 큰 계획을 가지고 미술사학자 허버트 리드를 고용하여 그로 하여금 현대미술에 관한 예술가와 미술품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도록 했다.
페기는 브라크, 레제, 클레, 칸딘스키, 그리, 피카비아, 글레이즈, 몬드리안, 미로, 에른스트, 탕기, 달리, 데 키리코, 마그리트, 만 레이, 반 되스부르크, 세베리니, 그리고 발라의 그림을 구입했으며, 조각으로는 브랑쿠시, 립시츠, 자코메티, 아르프, 무어, 그리고 펩스너의 것들을 구입했다.
피카소는 페기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브랑쿠시는 그녀와 흥정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페기의 말로는 자기가 브랑쿠시와 여러 번 섹스를 했는데도 <공간의 새>를 4천 달러에 사라고 한다면서 비싼 가격이라고 투덜댔다.

독일군대가 덴마크과 노르웨이로 진군했고, 곧이어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진군했다.
페기가 브랑쿠시의 화실에서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공간의 새>를 구입할 때 독일군대가 파리를 향해 진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뒤샹은 바닷가에 있는 동네 아르카총으로 갔으며, 달리와 갈라 부부 그리고 몇몇 예술가들도 이미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메리가 며칠 후 그곳으로 왔고, 수잔느와 장 크로티 부부도 그곳이 안전하다고 판단해 오게 되었다.
그들은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다.

만 레이는 나치가 점령한 파리를 빠져나오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만 레이는 애인 아드리엔느 피델링과 함께 서쪽 해변가로 가려고 했지만 피난민들과 군용차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갈 수 없었다.
4주 후 그는 기차를 타고 비아리츠로 가서 그곳에서 미국인 작곡가 버질 톰슨을 만나 그와 함께 겨우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갈 수 있었다.
리스본에는 피난민들로 가득했으며,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었다.
그는 운이 좋게도 미국으로 떠나는 배에 승선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고향에 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너무 오래 파리에서 생활했으므로 오히려 고향을 떠나 타향에 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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