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교황제도
중세의 역사는 590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즉위로 시작되었다.
교황 제도의 성서적 의미는 마태복음서 16장 18~19절에 근거하며 그리스도로부터 지상의 대리자로 임명을 받은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하자 훗날 교황으로 추대되면서 로마의 주교는 자연히 베드로의 뒤를 잇는 교황이 되었다.
540년 로마의 부유한 원로원 가정에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는 정부의 장관급에 등용되었지만 사임하고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수도원에 바치고 수도사가 되어 근엄하고 금욕주의적 생활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다운 종이 되기에 노력하였다.
그는 가장 위대한 교황이며 교회사에 있어 가장 저명한 인물들 중 하나이다.
카톨릭 교회의 교리, 조직, 규칙에 있어 그는 여러 면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중세 카톨릭을 말하려면 반드시 그레고리우스 1세를 알아야 한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도 교황으로 펠릭스 3세Felix III(483~92)이며 교황 아가페투스 1세Agapetus I(535~36) 역시 그와 같은 혈통이다.
당시 교황청은 프랑스, 이탈리아, 북아프리카에 막대한 교황령을 갖고 있었으며 교황청이 직접 관리하여 교황청의 유지비와 로마의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재원이었다.
그레고리우스라는 유능한 행정가로서 교직자들로 하여금 재산을 관리하게 했다.
학자로서의 그의 위상은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제롬과 더불어 4대 학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계보를 따랐다.
부패한 성직매매 행위를 바로 잡고 처벌했으며 교직자들이 보수를 강요하는 것을 엄금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동명이인) 등 30여 명의 수도사들을 영국에 보내 전도하게 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를 처음으로 칸더베리 대주교에 봉했다.
그는 겸손하여 자신을 가리켜서 "하느님의 종의 종일 뿐"이라고 했지만 당시 서방 교회로부터 갈라져 있던 동방 교회까지 지배하면서 "나는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는 사도권을 가진 교황이다"라고 했다.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그는 교회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두 팔에 해당하므로 영적이며 국가는 세속적인 면을 담당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