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페기 구겐하임의 화랑

뒤샹이 국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던 날 런던으로 간 이유는 페기 구겐하임이 화랑을 개업하여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미국 구리왕의 딸로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페기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유럽을 자주 여행했으며, 아버지가 타계하자 미국보다는 유럽에 거주하기를 원했다.
그녀에게는 오빠가 일곱 명이나 있었고, 사업이 악화될 때 아버지가 타계했으므로 그녀에게 남겨진 유산은 45만 달러였다.
물론 많은 돈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녀를 백만장자라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 말이었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페기는 1938년 1월 24일에 런던의 콕가 33번지에 화랑을 열고 구겐하임 주느라고 불렀다.
페기는 첫 전시회를 장 콕토를 위한 개인전으로 열면서 근래 그의 그림과 드로잉을 소개했다.

페기는 한 해 전 열정적인 기질을 가진 전 남편 로런스 배일과 함께 파리에 왔을 때 전 남편을 통해 뒤샹의 애인 메리 레이놀즈를 만났는데, 배일은 과거에 메리와 정을 통한 사이였다.
페기는 메리의 친구가 되었지만 메리보다는 오히려 뒤샹에게 관심이 많았다.
뒤샹에 관해 매우 핸섬하다는 인상을 받은 페기는 “파리의 모든 여인들이 마르셀과 섹스하기를 원했다”고 했다.
페기 자신이 뒤샹과 섹스하기를 원해 그런 식으로 말한 것 같은데, 그녀의 바람기는 뒤샹의 바람기와 거의 같은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뒤샹은 이성적으로는 페기를 멀리하면서도 미술에 관한 사업에서만큼은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미술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페기는 말했다.

“난 현대미술품들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다.
마르셀이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그리고 추상미술의 상이한 점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모든 예술가들에게 소개했다. 모두 그를 좋아했고, 나를 반겨주었다.
그는 늘 내게 훌륭한 충고를 해주곤 했다.
나로 하여금 현대미술의 세계에 입문하게 한 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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