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레오나르도의 <마돈나와 카내이션>
레오나르도는 <베노이스 마돈나> 외에 동정녀 마리아를 한 점 더 그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또 한 점은 무엇일까?
현재 작품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의 스케치가 남아 있는데, <마돈나와 고양이 Madonna with a Cat>였을 것으로 미술사학자들은 추측한다.
이 작품은 <베노이스 마돈나>와 유사한데 꽃 대신에 고양이가 삽입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뮌헨의 피나코텍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마돈나와 카내이션 Madonna with a Carnation>이 이때 그린 것으로 추측한다.
이 작품은 한때 작가미상으로도 알려졌고, 베로키오의 작품이라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었고 근래에는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작품의 연대에 관해서도 분분하며 1478년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1473~76년에 제작했을 것으로 짐작하는 학자들도 있다.
레오나르도가 초기에 그린 것 같으며 <베노이스 마돈나>와는 구성이 달라 같은 시기에 그린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마돈나와 카내이션>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라고 믿어지는 이유는 분위기, 배경의 산을 파란색으로 칠한 점, 투명한 화병, 마돈나의 헤어스타일이 그의 다른 그림에서의 요소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난히 뚱뚱한 아기, 아기의 공허한 표정, 방석 위의 편안해보이지 않는 자세 등을 들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마돈나의 뻣뻣한 자세를 들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학자들은 베로키오나 로렌초 디 크레디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1479년의 문헌이 있어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가 생계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포르투갈 왕에게 바쳐질 타피스트리 제작을 위해 밑그림을 그렸다.
그 해 가을 그는 <파라다이스에서의 아담과 이브 Adam and Eve in Paradise>를 그린 것으로 적혀 있다.
이 작품에 관해 바사리는 적었다.
"레오나르도는 붓을 사용해 명암이 생기게 했고, 연한 흰색으로 부분적으로 강조했으며,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있는 풀밭을 그렸다. 그 어느 천재도 이처럼 자연스럽고 조심성스럽게 그려낼 수는 없다. 사람들은 무화과나무 한 그루와 원근법에 의한 잎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묘사한 매우 친근감을 주는 가지들을 보며 그 같은 신중함에 경이를 느끼게 된다. 작품에는 야자수가 한 그루 있는데 잎들의 극치는 오직 레오나르도의 재능에 의한 놀라운 예술적 효과인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레오나르도가 밑그림을 그린 타피스트리는 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플랑드르에서 실크로 짜고 금색실로 수놓기로 한 것인데 제작되지 않았고 밑그림은 피렌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사리는 이것이 16세기 중반 로렌초의 먼 친척이 되는 오타비아노 데 메디치의 집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
그후 그것은 사라졌고 더이상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다.
레오나르도가 펜과 잉크로 드로잉한 것들 중에 목을 매 처형한 장면이 있다.
이것은 그가 1479년 12월 31일에 그린 것이다.
로렌초 정권에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다 잡힌 사람의 처형 모습으로 음모자의 이름은 베르나르도 디 반디니 바론첼리이다.
이 자는 한 해 전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를 살해하는 데 가담했다가 로렌초의 부하 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후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
그는 대성당 안에 숨었다가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국경을 넘은 후 배를 타고 터키로 갔다.
그는 고대 콘스탄티노플 성 안에 숨어지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로렌초는 그 자를 살해하거나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그 자는 생포되어 피렌체로 인도되었고 1479년 12월에 처형되었다.
레오나르도는 처형장면을 직접 보고 드로잉했다.
그는 의상에 관해 상단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작은 브라운 모자, 검정색 서지serge(피륙) 저킨jerkin(소매 없는 짧은 남자용 상의), 안감을 댄 모직 속셔츠, 여우털을 안에 댄 파란색 겉옷, 붉은색과 검정색 벨벳으로 장식한 컬러, 베르나르도 디 반디니 바론첼리, 검정색 긴 양말."
그는 하단 왼쪽에 얼굴을 그려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