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브랑쿠시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에 관해

뒤샹의 부모가 1925년에 일주일 간격으로 타계했다.
넉 달 전 두 사람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가 성대하게 열렸는데,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2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추운 날씨에 장례식을 치르느라 아버지 외젠느는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으며, 이튿날 아파트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76해의 인생을 마감했다.
외젠느는 뒤샹의 몫으로 1만 달러를 남겼다.
뒤샹의 말로는 아버지가 그동안 아들들에게 생활비로 지불한 돈을 일일이 기록했다가 유산의 몫에서 공제했으므로 여동생인 이본느와 막들렌느가 가장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후 뒤샹은 프랑스 남쪽 니스로 가서 여섯 달을 지내며 체스 시합에 출전했고, 자신이 확률로 산술한 행운의 바퀴를 돌리는 도박을 했다.
그는 에티 스테타이머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내가 작성한 통계가 내게 자신감을 주었소.
난 그런 방법으로 도박을 하려고 하오.
기계적 정신으로 기계를 대적하는 것이오.
운도 없고, 낭만적인 모험도 없소.”

그는 도박을 우연이 아닌 지성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뒤샹은 두세에게 50프랑의 수표를 보내면서 <몬테카를로 차용증서>를 산 대가로 6개월치 이자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때 돈을 번 모양인데 그후 다시는 이익배당금을 지불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그 후로 계속해서 돈을 잃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몬테카를로 차용증서>는 결국 그것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었다.
그것은 훗날 값비싼 미술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뒤샹은 체스 시합에 자주 출전했지만 이는 수입이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돈을 벌어야 했고, 궁리 끝에 미술품을 매매하는 딜러가 되기로 했다.
그는 피카비아로부터 그림 80점을 받아다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 이스트리아에 보관하고 카탈로그를 만들면서 서문에 글을 썼다.
그는 1926년 3월 8일에 그 그림들을 매매하기 시작했다.
두세가 와서 초기의 커다란 그림을 구입했으며, 로세가 다다시절의 기계적 양식의 수채화 여섯 점을 구입했고, 브르통이 다섯 점을 구입했다.
브르통은 그때 사적으로 미술품 매매를 하고 있었다.
뒤샹은 10%의 이익을 챙겼다.

이 일이 있은 후 뒤샹은 로세와 함께 퀸이 소장한 브랑쿠시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에 관해 의논했는데, 퀸은 1924년에 타계했고 그가 수집한 것들 중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대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뉴욕 센트럴 파크 서쪽에 있는 방이 11개 달린 그의 아파트에는 미술품들로 가득 찼다.
피카소의 작품만도 <목욕하는 사람>과 <우물가의 세 여인>을 포함해서 50점이 넘었으며, 드랭과 마티스의 작품들도 그 정도로 많았으며, 마티스의 유명한 <파란 누드>도 있었다.
그의 수집품들 중에는 전시회를 통해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것들도 많았으므로 그의 아파트는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브랑쿠시와 레이몽 뒤샹 비용의 중요한 작품들을 그가 대부분 소장했고, 세잔, 반 고흐, 고갱, 그리고 쇠라의 작품들도 여러 점 되었다.
퀸이 마지막으로 구입한 작품은 루소의 <잠자는 집시>였는데 그것은 지금 뉴욕의 모마가 자랑하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들을 파리에 거주하는 로세를 통해서 구입했다.
그래서 로세는 누구보다도 퀸의 소장품 내용과 가격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퀸에게는 유산을 상속자가 없었고 유서에는 단지 세 점의 그림에 대해서만 언급되었을 뿐이다.
퀸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현대미술품에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퓌비 드 샤반의 그림 두 점을 그곳에 기증했고, 쇠라의 후기 대작 <서커스>는 루브르에 기증했으며, 나머지 작품들은 경매로 처분하도록 했다.
그의 소장품이 경매 처분된다는 소식은 국제 미술시장을 삽시간에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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