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은 가짜 수염을 달고 

 

그해 가을 피카비아는 발레 <막간>을 위한 무대장식에 열심이었는데 안무는 장 보랭이 맡았으며, 작곡은 에릭 새티가 했다.
<막간>은 디아길레프의 위대한 라이벌 롤프 데 마레가 이끄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스웨덴 발레단 수에도이스의 작품이었다.
당시 디아길레프와 데 마레는 근래의 예술가와 작곡가들과 협력하여 아방가르드 발레를 발표했다.
로베르 들로네의 가까운 친구이자 시인 브라이즈 센드라가 피카비아를 데 마레에게 소개하여 발레단과 인연을 맺게 했고, 페르낭 레제도 발레 작품 <세계의 창조the Creation of the World>를 위한 무대를 장식했다.
피카비아는 데 마레를 설득하여 젊은 필름 메이커 르네 클래어로 하여금 <막간>을 필름에 담도록 하고, 자신이 글을 삽입해 넣었다.
<막간>은 11월 27일에 공연하기로 예정되었으며, 주요 신문에 데 마레와 피카비아의 글이 실렸다.
피카비아는 관객들에게 공연을 보러올 때 진한 선글라스와 귀마개를 가져오라고 충고하면서 다다주의자들은 공연장에 와서 “새티는 꺼져라!”, “피카비아는 꺼져라!”라고 외치도록 주문했다.

11월 27일 샹젤리제 극장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입구에 毒럭U이란 팻말이 붙여진 것을 보았다.
毒럭U이란 극장이 문을 닫았다는 뜻도 되었다.
사람들은 피카비아가 자기들을 골탕 먹이려고 작정하고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극장 건너편 술집에서 피카비아는 뒤샹과 만 레이와 함께 극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내 말이 방송되었다.
그것은 피카비아의 장난이 아니라 주요 댄서 장 보랭이 갑자기 병이 나 공연이 취소된 것이었다.
일주일 후 <막간>이 공연되었을 때 평론가들은 처음부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대 뒤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관객들의 눈을 부시게 한 설치가 마음에 영 안든 것은 물론이고 소방수가 연신 양동이에 물을 담아와 무대에 퍼붓는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한 발레리나 한 사람이 음악이 없을 때만 춤을 추더니 음악이 나오면 오히려 춤추기를 중단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과 평론가들은 모두 막간에 상영된 영화 <막간>이 훌륭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르네 클래어는 “프란시스 피카비아가 주문한 대로 하느라고 저는 별로 할 일이 없었어요”라고 했으므로 <막간>의 성공에 대한 칭찬은 피카비아의 몫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몸에 꼭 끼는 흰옷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댄서들의 이미지가 병렬되어 나타나고 그런 장면이 유리판을 깔고 아래에서 위를 향한 모습으로 소개되었다.
파리의 야경이 삽입된 후 장면은 샹젤리제 극장의 지붕으로 바뀌었다.
극장 지붕 난간 끝에서 만 레이와 뒤샹이 체스를 두고 있었고, 체스 게임이 끝날 무렵 갑자기 거센 물이 체스판의 알들을 휩쓸었다.
댄서들이 깡충깡충 뛰는 장면이 한동안 계속되었으며, 장 보랭이 좌절한 사격의 명수로 등장했다.
그러다가 엉뚱하게도 낙타가 영구차를 끄는 장례식 장면이 소개되었다.
길게 늘어선 조객들의 행렬이 영구차의 뒤를 따라 파리 시가를 걸어갔다.
조객들의 발걸음은 자꾸 빨라져 결국 관은 길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원기를 회복한 시체(장 보랭)는 깡충깡충 뛰며 조객들은 사라졌다.

뒤샹은 <막간>의 마지막 공연에서 무대에 등장했다.
무대에는 아내, 그녀의 정부, 정부의 아내, 경찰관, 하녀, 발레리나(장 보랭),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아담과 이브가 누드로 잠시 무대에 등장했으며, 이브는 아담에게 사과를 먹으라고 권했다.
이브는 러시아 미녀 브론자 펄무터로서 근래 예술가들의 모델로 인기가 있었다.
시인 르네 샤가 그때 사다리에 올라가 조명을 비추는 일을 했는데, 샤는 그날로 브론자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얼마 후 결혼했다.
아담은 가짜 수염을 달고 등장하여 무화과 잎으로 자신의 성기를 가렸는데 그가 바로 뒤샹이었다.
뒤샹은 “난 가짜 수염을 달고 무화과 잎을 들고 누드로 아담의 역을 맡았다.
이브는 젊은 러시아 여인 브론자였는데 완전히 누드였다.
르네 샤가 위에서 조명을 우리의 머리 위로 비추었는데 샤는 브론자에게 반해 몇 달 후 브론자와 결혼했다.
난 중매쟁이였다! … 그것은 매우 다다적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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