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첫 초현실주의 선언문

의대에 재학한 적이 있는 브르통은 세계대전 때 군인병원 정신과에서 복무하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1921년 여름 그는 비엔나로 프로이트를 찾아가 자신의 판단을 전하면서 그의 의견을 직접 청취했다.
프로이트는 브르통이 말한 무의식이 의식보다 낫다는 판단에 전혀 찬성하지 않았다.
브르통과 필립 수포는 2년 동안 자동주의 작문을 진전시켜 왔는데, 자동주의 작문이란 두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무아지경을 조장한 후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과거에 다다주의를 추구한 예술가들은 폰태느 애비뉴 42번지에 있는 브르통의 아파트와 카페 시라노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꿈과 정신적 경험에 관해 의논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세계와도 같이 신뢰하려고 했다.

초현실주의는 원래 문학운동이었기 때문에 브르통은 뒤샹의 재치있는 말장난에 감동하였다.
피에르 드 마소는 1924년에 책을 썼는데 제목이 『놀라운 책: 로즈 셀라비에 관한 반영the Wonderful Book: Reflection on Rrose Selavy』이었다.
겉표지에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나는 마르셀을 배제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라고 쓴 글이 있었다.
드 마소는 서문에서 뒤샹을 가리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적었다.
서문 다음에는 12페이지가 빈 페이지로 계속되었고, 다만 각 페이지 위에 달month만 표기되어 있었다. 책의 뒷커버에는 뒤샹의 어록 15가지를 실었는데 ‘질식시키는 이방인들Etrangler l'etranger’, ‘그날의 여인은 그날의 우편물을 희롱할 것이다Daily lady cherche demeles avec Daily Mail’, 영어로 된 ‘내 조카딸이 차가운 이유는 내 무릎이 차기 때문이다My niece is cold because my knees are cold’ 등이었다.
드 마소의 저서는 사람들의 인생을 초현실주의로 바꾸어 놓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브르통은 1924년 10월에 惇?초현실주의 선언문First Surrealist Manifesto藍?발표하면서 초현실주의가 공식적으로 출범했음을 고지했다.
피카비아는 파리에서 계속 발행하는 잡지 『391』에 “초현실주의는 다다의 형편없는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앙드레 브르통은 혁명가가 아니라 야심가일 뿐이다”라는 말로 브르통을 공격했다.
이 시기에 피카비아는 기계주의 드로잉을 중단하고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피카비아는 계속해서 다다주의자로 행세했다.
그는 『391』에 적었다.

“미술은 날조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단순하면서 드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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