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브라만테와 우정을 나눴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갔을 당시 그곳에는 일류급 음악가와 시인들은 많았다.
그곳에는 훌륭한 대학이 있었는데, 파비아에 소재한 대학에는 90명의 교수들이 법학, 의학, 철학, 수학을 가르쳤다.
최초의 그리스어 책이 발간되었으며 라스카리스Lascaris의 문법이 밀라노에 소개된 건 1476년이었다.
하지만 미술 분야에는 마스터가 한 명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롬바르드 양식 Lombard style'이란 혼성적 방법으로 조토와 피사넬로Pisanello의 양식에 훗날 토스카니, 베네치아, 플랑드르 예술가들의 영향이 섞인 것이다.
빈첸조 포파Vencenzo Foppa(1427년경~1515)는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오기 전까지 유일한 주요 예술가였다.
브레스치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타계한 빈첸조는 밀라노에서 주로 활약했다.
바사리에 의하면 그는 파두아에서 수학했고 원근법에 뛰어났으며 만테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활약했으므로 이 도시의 롬바르드 양식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멜로조 다 포를리Melozzo da Forli(1438~94)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로부터 수학한 도나토 브라만테가 밀라노에 있었지만 그는 회화보다는 건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회화를 포기한 듯 했다.
바사리는 그를 새로운 브루넬레스키라는 말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초상을 보면 둥근 얼굴에 강력한 인상을 풍긴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 공작의 주문을 받아 말 탄 사람을 청동으로 제작하고 싶어 했듯이 브라만테 역시 공작으로부터 건축을 위임받아 디자인하고 싶어 했다.
자연히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도나토 브라만테
건축가이면서 화가인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Donato di Angelo, 1444년경~1514)는 건축에 있어 성기 르네상스 양식의 전형적 인물이다.
초기에 회화에 헌신했지만 건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우르비노 근처에서 태어나 우르비노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의 궁전에서 수학했고 라벤나와 만투아를 여행했다.
처음 그가 프레스코화를 그린 것은 1477년으로 베르가모의 포데스타 궁전 외관을 장식했다.
그가 밀라노에 안주한 것은 1480년경이었으며 1481년에 현존하는 건축에 관한 디자인을 판화로 제작했다.
이 시기에 그의 첫 건축물 산타 마리아 예배당을 디자인했다.
그가 그린 현존하는 유일한 프레스코화는 밀라노의 브레라Brera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1480~5년경에 그린 무장한 군인들의 모습이다.
브라만테는 1499년 로마로 갔으며 1506년에 성 베드로 성당을 개축하기 시작했다.
그가 로마에서 화가로 활약한 기록이 없어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않고 건축에만 전념한 듯 보인다.
바사리에 의하면 바티칸 스탄즈에 있는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파 The School of Athens>에 보이는 건축적 배경을 브라만테가 디자인했다.
라파엘로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를 <아테네 학파>에서 수학자 유클리드Euclid로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