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브르통은 뒤샹에게 두세와 함께
뒤샹은 1923년 2월 로테르담으로 가는 네덜란드 배에 승선했다.
그는 브루셀에서 4개월 동안 머물 때도 매일 체스를 두었다.
그가 1921년에 피카비아에게 보낸 편지에는 직업 체스 선수가 되고 싶다고 적혀 있다.
그는 체스 클럽 회원이 된 후 벨기에에서 가장 체스를 잘 두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해 가을 브뤼셀의 체스 대회에 나갈 선수를 뽑고 있었는데 그는 에티 스테타이머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작은 나라에서 출발해서 … 언젠가는 프랑스의 챔피언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비교적 체스를 잘 두는 편이었으므로 10점 만점에 7.5점을 받아 3등에 올랐다.
그는 파리로 귀향했다.
봄에 루엥에서 거행된 여동생 이본느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이본느의 신랑은 군인 알퐁소 두베르노이로서 인도차이나에 주둔하고 있었다.
뒤샹은 몽파르나스에 작은 방을 얻고 그곳에서 체스의 문제들을 혼자 풀면서 연구에 매진했다.
이 시기 파리의 미술계에는 여전히 다다의 기운이 넘실거렸고 브르통의 활약이 현저했는데, 그는 곧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새로운 미학운동을 주창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브르통은 자신이 이끄는 그룹에 뒤샹이 가세해주기를 바랐지만 뒤샹은 초현실주의자들의 모임에 가는 것을 꺼려했다.
브르통은 자크 두세에게 보낸 편지에 “만일 그가(뒤샹) 거리감을 두지 않고 매우 절망적이지만 않다면 난 많은 것을 그에게서 기대할 수 있다네”라고 적었다.
브르통은 그때 의상 디자이너 두세의 미학 자문역을 맡고 있었고, 두세는 18세기 프랑스 대가들의 그림을 주로 수집했으며 브르통의 권유로 근래 예술가들의 그림들도 구입하고 있었다.
두세는 피카소의 대표작이면서 동시에 20세기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아가씨들>도 구입했다.
브르통이 그를 데리고 1924년 피카소의 화실을 방문했을 때 두세가 그것을 구입했다.
그 그림은 피카소가 1906∼1907년에 그린 후 전시회를 통해 한 번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브르통의 권유로 두세는 전에 뒤샹의 그림 두 점을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뒤샹이 1910년에 야수주의 방법으로 그린 <두 누드>와 <이웃 금속 물레방아를 포함한 글라이더>였다.
<글라이더>는 뒤샹이 레이몽에게 준 것인데 과부가 된 형수가 돈이 필요해서 두세에게 팔았다.
브르통은 뒤샹에게 두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었는데, 세 사람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세가 뒤샹에게 광학적인 기계를 제작할 것을 의뢰했다.
그것은 <회전하는 반구형>으로 만 레이와 뉴욕에서 제작한 <회전하는 유리판들>과 유사했다.
뒤샹은 1924년에 공학기사의 협조를 받아 제작했는데, 뉴욕에서 제작한 것보다 훨씬 정교했으며 또 안전했다.
그는 유리판 대신에 반구형 흰색 나무를 사용하여 검정색으로 원을 반복해서 그렸고, 작은 전기 모터에 의해 회전하도록 만들었는데, 원들이 앞으로 나오거나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반구형 나무를 매단 판을 검정 벨벳으로 씌운 후 볼록한 유리로 전체를 씌웠으며, 유리를 구리 원형판으로 안전하게 고정시켰다.
그는 구리 원형판에 ‘로즈 셀라비와 나는 우아한 말을 사용하는 에스키모들의 타박상을 피하려고 한다 Rrose Selavy et moi esquivons les echymoses des esquimaux aux mots exquis’라는 말장난을 적어 넣었다.
두세는 그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공학기사를 제공했고 뒤샹은 제작한 후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뒤샹은 물물교환을 원하니 돈은 안 받겠다고 우기며 두세가 전시회에 그것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짐받았다.
뒤샹은 두세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그림을 그린다든가 조각을 제작하는 일이 도대체 싫소.
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오.
어떤 사람이라도 이것을 광학적 의도 말고 다른 의도로 해석한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