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큰 유리>
1923년 새해를 맞은 뒤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뉴욕을 완전히 떠나 프랑스로 귀국하려고 했다.
창의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체스 말고는 어느 것에도 무관심했다.
<큰 유리>가 1915년에 뉴욕에 도착한 이래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것만 보아도 작품 제작에 관심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브르통의 칭찬에 의기양양해서 파리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뒤샹은 뉴욕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레디 메이드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레스토랑에 갔다가 ‘현상수배’란 포스터를 보았는데 사람들을 웃기려고 누군가가 붙여놓은 것이었다.
포스터에는 사진과 함께 글이 적혀 있었다.
"조지 웰츠를 체포하는 데 협조하시는 분께는 보상금 2천 달러를 드립니다.
웰츠는 뉴욕에서 훅, 리옹, 그리고 씬꾸에르란 이름으로 양동이 상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뒤샹은 인쇄업자에게 포스터를 만들도록 한 후 하단 아랫줄에 ‘Rrose Selavy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여권사진 두 장을 포스터에 부착했다.
뉴욕을 떠나는 그가 제작한 레디 메이드로는 어째 유감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캐서린이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녀는 뒤샹의 <큰 유리>를 아렌스버그로부터 구입하겠다고 제의했고, 아렌스버그는 그것을 로스앤젤레스로 운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데다 재정적으로 넉넉지 못한 터라서 캐서린에게 2천 달러를 받고 양도했다.
그 가격은 공교롭게도 ‘사람을 찾습니다’에 적힌 보상금과 같은 액수였다.
캐서린은 절반을 일시불로 하고 나머지는 향후 2년에 걸쳐 갚기로 했다.
뒤샹이 그것은 미완성이라고 말했는데도 두 사람은 완성된 미술품을 매매하듯 했다.
뒤샹은 미술관 큐레이터 캐서린 쿠에게 “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완성하지 않으려고 했다.
‘완성’이란 말은 전통적인 방법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또 전통주의에 따른 모든 장치를 수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을 만들어 전통주의로부터 탈출하려고 했다.
그가 뮌헨에서 두 달 동안 혼자 작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으로부터도 탈출하기를 원했는데 “나는 그저 나 자신을 표현하기보다는 정말이지 발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뒤샹은 캐서린에게 말했다.
“나는 미학적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보는 일에 결코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의도는 비록 내가 나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늘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와 ‘나 자신’ 사이의 작은 게임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작은 게임을 하면 할수록 자신을 더욱 표현하게 되었다.
그는 <큰 유리>를 더 이상 손대지 않은 채 센트럴 파크 서쪽에 있는 새 주인 캐서린의 아파트로 운반했다.
그는 <큰 유리>에 대한 짐을 그런 방법으로 벗을 수 있었다.
현재 필라델피아 뮤지엄의 뒤샹 화랑에 소장되어 있는 <큰 유리>는 가로 175.8cm에 세로 272.5cm이다.
뒤샹은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두 개의 유리를 위아래 수직으로 세웠다.
그것은 너무 커서 한눈에 관람하기보다는 시선을 여기저기 옮기면서 보거나 또 뒤로 물러나서 보아야 한다.
그는 그것이 그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묶어서 만든 『푸른 상자the Green Box』에서 그것을 ‘지연Delay’이라고 했다.
그는 <푸른 상자>에 적었다.
“그림이라고 하는 대신 ‘지연’이란 말을 사용한다.
… 그것이 그림이냐 하는 질문 자체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진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지연을 만드는 것은 지연에 대한 다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우유부단한 재결합에서 가능하다.”
<지연>이란 신비한 제목은 뒤샹이 자신을 감추려는 의도로 사용한 것으로, 여동생 수잔느와 섹스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심리적인 요소가 동시에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한 미술사학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