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브르통에 대한 뒤샹의 인상은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1922년에 다다 예술가들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초현실주의로 탈바꿈하도록 선도했다.
그는 그해 10월 『리테라투르』에서 뒤샹을 전설적인 인물로 소개하면서 “새로운 것을 찾는 예술가들의 진정한 오아시스”라는 말로 극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는데 시인의 글이라서 은유적이었다.

파리를 방문한 마르셀 뒤샹에 관해 나는 조금밖에 들은 바가 없었다.
막상 만나보니 과연 대단히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가 지닌 지성을 나는 과거에 본 적이 없었으며, 그의 인상은 호감을 주는 아름다운 얼굴에, 이목구비 어느 하나도 특별나게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 반짝이는 얼굴은 그 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숨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눈에는 아이러니나 진지한 것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조차 떨쳐 버리는 방자함이 엿보이지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 형태로 현저하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우아한 모습과 그 우아함을 뛰어넘는 편안함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마르셀 뒤샹의 근래 미술동향과의 관계는 독특하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그룹 예술가들이 그의 이름 안에서 행위하려 하며 개념이나 경향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완전한 자유는 그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들이 그의 허락을 받고 그러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 마르셀 뒤샹이 어느 누구보다도 재빨리 개념들의 쟁점을 포착한다고는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뒤샹이 대단한 일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동전을 허공에 던지고는 ‘앞면이 나오면 미국으로 가고, 뒷면이 나오면 파리에 머물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약간의 무관심도 없는 행위다.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가거나 머무는 일에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뒤샹은, 예를 들면 대량생산품에 서명함으로써 선택이 개인적으로 독립된 행위임을 시위한 첫 번째 사람들 중 하나였다. …
우리는 현재 미술과 인생에 관한 문제를 포함해서 다른 문제들로 의견이 분분한데, 마르셀 뒤샹에게는 이런 점들이 문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 글을 통해 훗날 초현실주의의 교황이라 불리는 브르통이 뒤샹에게 얼마나 존경심을 표했는지 알 수 있으며, 또한 뒤샹을 초현실주의의 기수로 언급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미국에서의 뒤샹의 위상은 이 정도까지 전설적인 인물로 부각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브르통의 평가는 어떤 예술가도 받지 못한 찬사였다.
뒤샹에 대한 브르통의 이해는 피카비아와 아폴리네르에게서 온 듯하다.
피카비아는 기회만 있으면 잡지 『391』에 뒤샹을 소개했고, 아폴리네르는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다녔지만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여 뒤샹에 관해 많은 말을 했다.
브르통은 뒤샹이 초현실주의의 기수가 되기를 은근히 부추겼지만 그의 추파에 뒤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브르통은 그를 자신의 초현실주의 운동에 포함시키는 일에 실패했지만, 지나치게 그에게 요구했다가는 아예 그를 만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브르통에 대한 뒤샹의 인상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
당시 우리는 매우 실제적인 것들을 교환했다. 그는 유쾌한 친구였다.
그는 문학에서 대단한 존재였고, 아라공과 엘뤼아르와 같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앞선 독보적인 존재로서 두 사람은 단지 그의 휘하에 있었을 뿐이다.
내가 언제 그를 만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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