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은 돈벌이에 관한 아이디어가 생기자

뒤샹은 돈벌이에 관한 아이디어가 생기자 차라에게 동업을 제의하는 편지를 썼다.
작은 목걸이에 D A D A 네 글자를 부착하여 우편 판매하는 일인데는 장차 팔찌와 타이핀도 만들자고 했다.
“우주적 만병통치약, 또는 주물fetish입니다. 치통이 있다면 치과의사에게 가서 Dada냐고 물으십시오”라는 광고 카피도 만들었다.
차라는 유럽 시장, 자신은 미국 시장을 맡자고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말뿐이었지 실행되지 않았다.

실제로 뒤샹도 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레옹 아르라는 사내와 동업하였는데 당시 만 레이에게 보낸 편지에 “난 사업가라네. 아르와 염료상점을 샀네. 그는 염색하고 나는 경리를 맡았지. 사업에 성공하면 장차 우리가 무엇을 할지 모르겠네”라고 적었다.
아르는 프랑스인으로 1912년에 뉴욕으로 이민 왔다.
그는 풍경화와 정물화를 그리는 화가이자 아닐린 염색 전문가이기도 했다.
아르는 옷과 깃털을 염색하는 상점을 열면서 뒤샹에게 이익을 반씩 나누는 동업자로 참여하라고 권했다.
시간이 남아돌아가는 마당에 뒤샹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르가 아버지로부터 3천 프랑을 받아 사업을 시작한 것이었는데 6개월 후 그 돈은 공중분해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1922년 가을 뒤샹에게 가장 큰 이벤트는 마샬 체스 클럽에서 벌인 라울 카파블랑카와의 단체경기였다.
카파블랑카는 쿠바의 대표선수로 뉴욕에 초대되어 왔다.
그는 클럽에서 24명과 동시에 체스를 두어 20명으로부터 승리를 거두었다.
뒤샹은 다행히도 4명 중에 포함되었다.
체스에 몰두하느라 그는 <큰 유리>를 방에 그냥 방치해두었다.
스티글리츠가 오키프와 함께 그의 스튜디오에 가보니 유리가 벽에 기댄 채 있었다.
오키프는 먼지가 잔뜩 낀 방을 둘러보고 “방이 한번도 청소를 한 적이 없어 보였다”고 상기했다.
오키프는 말했다.
“그는 이곳에 온 후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혼자 자는 침대가 한켠에 있었고, 왼쪽 벽에는 체스판이 있었지요.
그 옆에 길게 펴는 의자가 있었구요.
의자 옆에는 기다란 못이 나와 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옷이나 몸을 찢겠더라구요.
… 먼지가 방 전체에 어찌나 많은지 제법 두께가 쌓여 있을 정도였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답니다.”

스티글리츠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사진이 특유의 미술품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설문을 돌렸는데 뒤샹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소.
나는 다른 것이 사진을 견딜 수 없도록 하기까지 사진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림을 경멸하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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