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오키프는 뒤샹과의 만남을 생생하게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러 나라의 작가, 음악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여 파리는 다시 예술의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샹은 파리보다는 뉴욕을 선호했다.
왜 뉴욕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뉴요커들이 훨씬 더 자신을 혼자 있게 내버려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34살의 뒤샹은 1922년에 다시 뉴욕으로 왔다. 링컨 아케이드의 작은 방으로 돌아온 그를 먼지가 잔뜩 낀 미완성의 <큰 유리>가 묵묵히 반겼다.
아렌스버그와 루이스 부부는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했는데 주요 원인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과음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남편과 함께 먼 곳으로 이주하는 데 전적으로 찬성했다.
뒤샹이 그에게 “그곳에서 24시간을 무엇을 하며 지낼 수 있겠느냐?”고 묻자 아렌스버그는 “자연은 자주 스스로를 반복해야만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만 레이에게 보낸 편지에 <큰 유리>에 별로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한 작품에 7년이나 몰두하다 보니 그는 작업에 진력이 났다.
“다른 미술품들에 비해 … 전혀 불필요한 것을 제작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유리에 작업하는 일이 실증난다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왜 계속해서 작업해야 하는가를 묻는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겨우 생활할 만큼의 돈을 벌었다.
마샬 체스 클럽에 가는 횟수가 자연히 줄었고, 집에서 혼자 체스를 연구하는 일이 잦았다.
로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화가로 남느냐 아니면 필름 메이커가 되느냐에 관해 목하 궁리중이라면서 우선 체스에 빠져 있다고 적었다.
캐서린은 미술품을 구입하기 위해 18개월 예정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 중이었으므로 무명사회의 전시회는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중단되었다.
뒤샹은 한 달에 한두 번 웨스트 76번가에 있는 스테타이머 자매의 아파트로 가서 그녀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는데 세 자매는 노처녀들이었다.
그곳을 맥브라이드, 패츠, 스티글리츠가 출입했다.
스티글리츠의 젊은 애인 조지아 오키프도 종종 그를 따라왔다.
오키프는 1924년에 스티글리츠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오키프는 뒤샹과의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때 그녀는 20대 초반이었다.
전 파티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그러나 뒤샹이 그곳에 있었고, 대화가 이어졌지요.
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제가 차를 다 마시면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제 컵을 받아가지고는 우아하게 옆에 내려놓았는데 전 그런 장면을 과거에는 본 적이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