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벨리니 가족: 야코포, 젠틸레, 조반니
벨리니 가족 삼부자는 15세기 중반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었다.
야코포 벨리니(1400년경~70/1)는 젠틸레와 조반니의 아버지였고 또한 만테냐의 장인이었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로부터 수학한 야코포는 스승과 함께 피렌체에서 작업했으며 일찍이 고향 베네치아와 그 외의 지역에서 명성을 쌓았다.
그의 대표작 대부분 현존하지 않지만 마돈나와 아기 그리스도를 묘사한 <성모자> 몇 작품이 남아 있어 그의 양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후기 고딕의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은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고딕의 우아함은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당시 동시대 예술가들의 관심사인 고고학, 원근법, 해부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두 권의 스케치북이 현존하여 그의 개성적 성향을 살펴볼 수 있는데 230점 이상의 드로잉이 있으며 많은 드로잉에서 공간을 나타내기 위해 원근 효과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스케치북은 루브르와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젠틸레 벨리니(1429?~1507)는 아버지의 스케치북을 물려받았고 작업장을 열고 사업을 시작했으므로 조반니의 형으로 추정된다. 아버지의 명성에 힘입어 그도 베네치아에서 주요 예술가로 활약했지만 많은 그의 작품들이 사라지고 현존하지 않는다.
그는 1479~81년 콘스탄티노플 궁정에서 작업하면서 술탄 메메트 2세Sultan Mehmet II의 후궁을 위해 에로틱한 장면들을 그린 것으로 전해지지만 작품들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메메트의 초상은 현존하고 보존상태가 나빠 복원했으며 현재 런던 국립화랑에 소장되어 있다.
조반니 벨리니(1430?~1516)는 가족 중에서 가장 빼어난 예술가였으며 베네치아 미술을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지인 피렌체와 로마에 버금가는 곳으로 향상시켰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회화를 수학했지만 매제 만테냐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이 1460년경에 그린 현재 런던 국립화랑에 소장되어 있는 동일한 제목의 그림 <예수의 고뇌 Agony in the Garden>를 보면 두 사람의 유사한 점과 상이한 점을 알 수 있으며 특히 풍경에 대한 묘사가 그러 하다.
만테냐의 작품은 구체적이며 분석적이고 날카로운 데 비해 조반니의 작품은 서정적이며 대기의 공간이 묘사되어 있다.
조반니는 만테냐 외에도 1475~6년 베네치아에 체류했던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의 영향을 받았다.
조반니는 안토넬로와 더불어서 당대 오일물감을 다루는 데 뛰어났다. 그는 장수했으며 늙어서도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했고 그가 타계하기 전에 그린 <거울 앞의 여인 Woman with a Mirror>에서는 조르조네Giorgione의 영향이 엿보인다.
조르조네는 조반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조반니의 창작력은 샘물처럼 솟아났고 1505~7년 베네치아를 방문한 뒤러는 조반니가 늙었지만 여전히 “최고의 화가”라고 극찬했다.
조반니의 초상화는 매우 훌륭했다. 그의 <성모자>는 빼어나 라파엘로만이 그와 재능을 겨눌 수 있었다. 베네치아 미술에 끼친 그의 영향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