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불안한 균형>

캐서린 드라이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잠시 왔다.
그녀는 1919년 4월 뉴욕으로 돌아오면서 뒤샹이 그곳에서 제작한 작품 두 점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광학적 실험 작품으로 제목이 <손으로 보는 입체경>인데 한 쌍의 바다풍경 사진으로 그 위에 뒤샹이 같은 형태의 다양한 면이 있는 피라미드를 그려 넣은 것이었다.
입체경으로 사진을 보면 피라미드는 마치 물 위에 둥둥 떠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하나는 유리에 습작한 것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고 그가 곧 작업에 착수한 것이었다.
하단 오른쪽 부분은 나중에 <큰 유리>의 일부분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큰 유리>와 무관했으며, 끝이 뾰족한 수직으로 세운 나무토막은 확대경을 받치고 있는데 뒤샹이 실제 확대경을 풀로 붙인 것이었다.
그 위에 피라미드를 그리면서 그는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을 사용하여 많은 수평선을 그었다.
그것은 수수께끼 같은 작품인데다 제목마저 <한 눈으로 가까이서 거의 한 시간 동안 (유리 뒤에서) 바라볼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부쳤다.
캐서린은 뒤샹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안한 균형>으로 고쳤다.
뒤샹은 그녀가 제멋대로 제목을 고친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수용하였다.
불평은 그의 기본 미학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선정한 레디 메이드 작품은 파리의 수잔느와 장 크로티가 주문하여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1919년 4월 14일에 결혼했는데 뒤샹은 결혼선물로 그들에게 기하에 관한 책 한 권을 끈에 달아 발코니에 매달도록 주문하면서 “바람으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며 절로 문제를 선택하게 한 후 페이지를 찢게 하라”고 지시했다.
뒤샹은 이것을 ‘불행한 레디 메이드’라고 했다.
결혼선물로는 달갑지 않았지만 수잔느와 크로티는 뒤샹의 지시대로 책을 매달고 바람이 책장을 절로 넘기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수잔느는 후에 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후 <마르셀의 레디 메이드 불행>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뒤샹은 “행복과 불행의 개념을 레디 메이드에 부여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재미있었다.
비와 바람이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흥미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뒤샹은 자신의 말대로 체스에 미쳐버렸다.
그는 아렌스버그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나는 체스에 미쳐버렸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기사Knight나 왕후처럼 보이고, 그것들이 변화를 일으켜 게임에 이기거나 지는 것밖에는 다른 어떤 관심도 내게는 없다네.”

그가 얼마나 체스에 몰두했는지는 미나 로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 지 한 달 혹은 그 이상이 지났는데도 그녀를 만나지 않은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미나는 아서 크라반을 따라 멕시코로 갔다. 크라반은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미국을 도망쳐 나와 두 사람은 멕시코 시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크라반은 피카비아가 뒤샹에게 소개한 사내였다.
피카비아가 바르셀로나에서 크라반을 만났을 때 그에게 뉴욕으로 갈 것을 권유했고, 그는 피카비아의 말대로 뉴욕으로 왔다.
“나는 문명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크라반은 잘생기고 건장한 청년으로 싸움을 좋아했으며, 스스로 오스카 와일드의 조카라고 했다.
그는 1911년에 자신이 창간한 잡지 『오늘날』에서 파리의 대부분 예술가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오늘날』은 1913년에 폐간되었다.
그는 징병을 피해 중립지대인 바르셀로나로 가서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권투선수 잭 존슨에게 도전했는데, 존슨도 미국으로부터 그곳에 도망쳐 와 있었다.
크라반이 존슨에게 도전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웃기는 일이라고 했다.
크라반은 프랑스에서 아마추어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딴 적은 있었지만 감히 프로 헤비급에 도전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예상대로 존슨은 그를 6회전에서 쓰러뜨렸는데 크라반은 그때 번 돈으로 뉴욕으로 올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그때 뉴욕으로 온 사람은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스키였다.
트로츠스키는 크라반에 관해 “그는 자신의 갈비뼈가 독일인에 의해 부서지기보다는 고상한 운동으로 양키 신사의 턱을 부서뜨리는 것을 더욱 원했다”고 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1916년에 <바르셀로나 권투 포스터(아서 크라반 대 잭 존슨)>를 만든 것으로 미루어 당시 존슨에 대한 크라반의 도전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나는 뒤샹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딴 여자에게 관심을 두자 “그는 내 코 앞에서 말처럼 생긴 여자와 섹스를 했다”고 투덜거렸다.
미나가 뒤샹과 함께 있는 크라반을 사랑의 파트너로 선정한 것은 뒤샹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설계하지 않은 채 크라반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크라반에게는 말도 없이 한동안 사라지는 버릇이 있었는데 결혼식을 올린 후에도 그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고, 미나는 참다못해 혼자 영국으로 가버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