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끈질긴 이사벨라'
1500년 초 레오나르도는 베네치아로 갔다.
이때 스페인군은 나폴리를 놓고 프랑스군과 싸웠고 나중에는 롬바르디를 두고 프랑스와 겨루었다.
스페인군은 프랑스군을 내모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은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쫓겨났다.
이탈리아가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서 통일을 이룩한 후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에 존경심을 표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바사리의 말로는 레오나르도의 ꡒ부드럽고 어두운 muted and darkꡓ 양식을 젊은 조르조네Giorgione(Giorgio Barbarelli 혹은 Giorgio da Castelfranco, 1477년경~1510)가 매우 좋아했으며 평생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유화에 폭넓게 사용했다고 한다.
바사리에 의하면 팔마 베키오Palma Vecchio 역시 레오나르도의 영향을 받았다.
레오나르도는 1500년 4월 피렌체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 48이었다.
그는 아버지 세르 피에로를 만났는데, 피에로는 이른네 살의 노인이 되었다.
피에르는 비아 기벨리나의 새집에서 네 번째 아내 공증인의 딸 루크레지아 디 구글리엘모와 열한 자녀들과 살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아버지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쓴 것 같았는데, 한 통만 남아 있다.
그 편지는 아버지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피에로도 종종 아들에게 편지를 썼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사벨라는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지만 소식이 없지 매우 궁금해 했다.
1501년 3월 그녀는 피렌체인 신부 프라 피에트로 다 노벨라라에게 편지를 보내 레오나르도의 안부를 물으면서 그가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지 또 피렌체에는 얼마나 머물게 될 것인지 등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아파트를 장식할 그림의 주제와 언제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작은 크기로 마돈나를 그려줄 수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레오나르도를 만난 후 신부가 1501년 4월 8일 이사벨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ꡒ레오나르도의 생활은 불안정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처럼ꡓ 보인다고 적혀 있다.
그 편지에는 신부의 청탁으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에 대한 언급과 함께 스케치가 있는데,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동정녀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성 앤 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에 관한 것이다.
그러면서 신부는 레오나르도는 그 밖의 어떤 작업도 하지 않고 있으며 ꡒ간간이 초상화에 붓질을 하지만 그의 제자 두 사람이 그리고 있다ꡓ고 적었다.
이사벨라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관철시키는 성격이라서 신부는 4월 14일에도 편지를 보내 레오나르도의 근황을 알렸는데, 레오나르도가 프랑스 왕에 총애하는 플로리몽 로베르테를 위해 작은 그림 <마돈나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 Madonna with a Yarn-Winder>를 그리고 있으며 그것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다른 작업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서 몇 차례 더 레오나르도에게 약속한 그림을 그려줄 것을 청했고, 1504년 5월 14일에는 안젤로 델 토바글리아a라는 사람을 시켜서 돈을 많이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동시에 손수 편지를 써서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마스터 레오나르도 선생, 피렌체에 안주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저희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다는 점을 알려드렸으며 … 선생이 저희들에게 오셨을 때 초크로 저희의 초상을 드로잉한 걸 보여주면서 언젠가 채색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이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약속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선생이 약속하신 그림을 그려주는 대신 12살 가량의 아기 그리스도의 그림, 말하자면 성전에서 성서학자들과 함께 계신 모습을 선생 예술의 특징이 되는 매력적이고 온화한 분위기로 그려주셨으면 합니다. 선생이 저희가 원하는 그림과 선생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우리가 제안한 돈에 만족해 하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사벨라는 1504년 10월 30일에 레오나르도에게 한 번 더 편지를 보냈다.
그녀의 집념은 대단했으며 1506년에는 레오나르도가 1505년 봄 피솔레에서 다시금 만난 세르 피에로의 첫 번째 아내의 남동생 카논 알레산드로 데글리 아마도리에게 자신을 위해 레오나르도를 설득해줄 것을 청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페루지노, 라파엘로, 티치아노를 설득해 결국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달랐다.
그녀가 마음을 끄는 제안과 더불어 친절한 태도를 보였지만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지나친 간섭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페루지노에게 보낸 편지에 ꡒ이 그림에서 선생의 어떠한 발명도 보태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ꡓ라고 적었다.
레오나르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매우 소심성을 보였는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ꡒ제 생각에 선생에게 몇 마디 드려야 할 것 갑습니다.ꡓ
그렇지만 레오나르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예 답장조차 보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