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이 체스에 전념한 사실은

뒤샹이 체스에 전념한 사실은 이원론적인 그의 정신세계를 잘 설명해준다.
대부분의 프랑스 지성인이 르네 데카르트와 앙리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아 이원론적 세계를 추구한 것처럼 그도 두 세계에 병존하고 있었다.
그는 미술에 관한 어떤 개념에도 회의를 일으켰는데 다음과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나는 내가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모색했는데 이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줄곧 과거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거의 수학적으로 정밀한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찾았음을 여태까지 그가 추구한 미술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체스는 수학적 정밀함을 필요로 하므로 그의 취향에 맞았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체스는 놀라울 정도로 데카르트적이다.
… 체스두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조화를 창조하는데,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볼 수 없겠지만 결국에는 신비한 것이 아닌 줄을 알게 된다.
체스는 순수논리의 결과다.
미술은 이와는 전혀 상이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뒤샹은 미술과 체스가 좀더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1952년 뉴욕 주 체스 연합대회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많은 예술가와 체스 두는 사람들을 만난 결과 나는 모든 예술가들이 체스 두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모든 체스 두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란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뒤샹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고 얼마 후 <체스알>을 레디 메이드로 선정했다.    

그가 지나치게 체스에 열중하자 이본느는 마침내 뒤샹에게 화를 내고 짐을 싸서 프랑스로 가버렸다.
뒤샹은 크로티에게 보낸 편지에 “난 이본느에게 떠나지 말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그녀의 의지와 나의 욕망은 제대로 타협되지 않아, 결국 그녀는 나를 떠나버렸네”라고 적었다.
그러나 향후 10년 동안 두 사람은 계속해서 만났고, 이본느가 영국인과 결혼해서 런던으로 가기 전까지 뒤샹과는 계속해서 섹스를 했다.
이본느는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피터 리옹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피터는 뒤샹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뒤샹에 대해 피터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머니는 그분에 관해 별로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지만 나는 늘 마르셀이 어머니가 평생토록 사랑하신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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