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간 뒤샹
뒤샹이 전쟁 중에 안전지대인 스페인이나 스위스로 가지 않고 왜 아르헨티나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인터뷰에서 친구의 아버지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창녀촌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인 것 같지 않다.
그가 파리를 떠나려는 목적으로 뉴욕으로 왔던 것처럼 뉴욕을 떠나려는 목적으로 그곳으로 향했던 것 같다.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기 전 1918년 8월 플로린에게 <플로린에게 안녕>이란 제목으로 뉴욕으로부터 미지의 세계 아르헨티나로 항해하는 그림을 지도 위에 그려주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의문부호가 그려져 있어 그 자신 호기심을 가지고 그곳으로 떠났음을 짐작하게 했다.
뒤샹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온 지 3주 만에 수잔느의 전보를 받았다.
레이몽이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워낙 건강하지 못하던 레이몽은 파리 시외 샴페인 근처에 있는 군인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1916년 늦게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고생하고 있었다.
게다가 부상당한 군인환자로부터 악성 연쇄상구균에 감염되었다.
레이몽은 칸느에 있는 병원에서 1년 이상 치료받으면서 18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균을 제거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된 가운데 1918년 10월 7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뒤샹과 이본느는 알시나 1743번지의 작은 아파트를 얻었다.
전쟁은 거의 끝났지만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아파트에서 몇 블럭 떨어진 사르미엔토 1507번지에 방을 얻어 작업실로 사용했다.
그는 <큰 유리>에 관하여 여전히 생각했으며, 그것에 관한 모든 메모를 아르헨티나로 가지고 왔다.
그는 10월에 크로티에게 보낸 편지에 “난 어떤 결과가 될 것인지를 실험하기 위해서 작은 유리에 작업했고, 그것을 뉴욕으로 돌아갈 때 <큰 유리>에 적용하려고 하네”라고 적었다.
그는 또 “졸리운 검은 얼굴들을 깨우기 위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모던 아트를 소개할 계획으로 뉴욕에 있는 프랑스 친구 앙리 마틴 바르주에게 입체주의 예술가들의 그림 30점을 위탁판매 형식으로 보내달라고 주문했으며, 파리에 있는 크로티에게는 입체주의에 관한 책들을 보내달라면서 제목들을 적었다.
아폴리네르의 『입체주의 예술가들the Cubist Painters』, 글레이즈와 메쳉제의 『입체주의에 관하여』, 잡지 『파리의 이브닝』, 그리고 말라르메의 시집 네 권이 그것이다.
그는 아렌스버그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정한 방침에 의거하여 난 아무것도 전시하지 않을 것이요”라고 적었다.
그러나 바르주는 뒤샹을 실망시켰다.
그는 그림을 보내지 않았다.
뒤샹은 크리스마스 몇 주 전 에티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존재하지 않아요. 멋도 모르는 부자들이 사는 커다란 시골 동네에 불과하지.
그들은 모든 것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돌까지도 유럽으로부터 구입하고 있구려.
여기서 제작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으며 … 난 뉴욕에서 까마득하게 잊었던 프랑스 치약을 여기서 발견했다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난 이곳에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발견하고 매우 행복하다오. 하는 일이 즐겁기만 하구려 …”라고 적었다.
그가 말한 ‘하는 일’이란 체스를 두는 것을 뜻했다.
그는 이전에 아렌스버그의 집에서 그리고 1916년에 회원으로 등록한 마샬 체스 클럽에서 체스에 몰두했는데 여러 날 밤을 새벽 3시까지 둔 적도 있었다.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체스를 함께 둘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여 서점에서 체스에 관한 잡지를 구입했다.
잡지에는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가 쓴 40가지의 게임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는 잡지를 통해 체스를 연구했다. 1919년 봄에는 동네에 있는 체스 클럽에 회원으로 등록하여 유명한 사람으로부터 체스를 배웠다.
그는 아렌스버그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늘 체스를 두며 지낸다네.
이곳 체스 클럽에 등록했는데 아주 잘 두는 사람들도 있네.
아직 그 반에 속하지는 못했지만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등급에 속한 반의 사람들과 체스를 두는데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네”라고 적었다.
그는 스테타이머 자매에게 보낸 편지에 회화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난 밤낮으로 체스만 두고 있소.
이것 말고는 내게 흥미 있는 일이 없구려”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