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은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
뒤샹은 뉴욕을 떠나고 싶어 했다.
크로티에게 보낸 편지에 어쩌면 이본느와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갈 것 같다면서 적었다.
“자네가 아는 대로 많은 이유로 뉴욕을 떠나고 싶은데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네.
그저 A(아렌스버그를 말함)와 함께 지내는 것이 피곤해서일세.
병든 사람들이 아마도 이런 식으로 일들을 처리하겠지.”
그는 아렌스버그와 그의 아내와의 갈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듯하다.
그러면서 그는 적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달라졌네.
자네가 여기 온 후로 유리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작업할 만한 충동이 생기지 않아.
다른 나라에라도 가게 되면 어쩌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길지도 모르겠어.”
한때 뒤샹의 학생이었던 에티 스테타이머는 7월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뒤샹이 다음 달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날 예정인데 그가 왜 떠나려는지 난 알 수 없다.
그는 이곳에서 더 이상 행복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나더러 함께 가자고 세 번이나 말했다!
그가 뭐라고 하더라도 난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는 그곳에 친구도 없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난 그에게 병이 나거나 무일푼이 되면 연락하라고 말해주었지만 그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가련하고 작은 떠돌이 원자atom, 낯선 소년. 하지만 사랑스러운 이.
스테타이머 세 자매 가운데 에티가 유일하게 뒤샹에게 일방적으로 로맨틱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에티는 뒤샹에게만 그런 감정을 품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 태생 미국 조각가 엘리 나델만에게도 연정을 품었다.
그녀와 나델만과의 관계는 알 수 없는데 에티가 자신의 기록을 나중에 면도칼로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뒤샹이 정말로 에티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떠나고 싶어 함께 가자고 했을까?
그는 이미 이본느와 함께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뒤샹은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 작업하다 중단한 <큰 유리>를 아렌스버그의 아파트 창고로 옮겨놓았다.
그는 1918년 8월 11일 아렌스버그에게 “잘 있게나 친구여, 최소한 이 년 후에나 만나게 될 걸세”하고 메모를 남겼다.
뒤샹은 8월 13일 스위스 벡스에 있는 온천에서 신경쇠약증으로 요양하고 있는 피카비아에게 보낸 편지에 아르헨티나로 오라고 권하면서 “자네와 다시 체스를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네”라고 적었다.
그는 이본느와 함께 27일이나 걸려서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