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피카비아는 뒤샹과 술을 많이 마시고
피카비아는 88번가 웨스트 110번지로 이사했는데 그 집은 루이스 노턴의 부모가 소유한 집이었다.
루이스와 알렌 노턴이 별거한 후 그 집 아래층을 피카비아에게 빌려주었고, 위층은 글레이즈 부부에게 빌려주었다.
어느 날 밤 피카비아는 뒤샹과 술을 많이 마시고 대화를 오래 하다 보니 배가 고팠다.
두 사람은 요리를 하려고 냉장고에서 양다리를 꺼냈는데, 그것은 글레이즈가 자신의 냉장고가 작아 그곳에 임시로 넣어둔 것이었다.
양다리에는 ‘글레이즈 부부는 당신의 행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이것은 뉴욕 다다의 익살과도 같았다.
가브리엘은 피카비아의 지나친 음주와 바람기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9월 중순에 아이들이 있는 스위스로 떠났다.
피카비아는 얼마 후 알코올 중독으로 신경쇠약증에 걸려 의사로부터 정신질환을 치료받았는데, 계속 치료받기에 유럽이 나을 것 같아 그도 뉴욕을 떠났다.
뒤샹은 가을에 프랑스어를 배우겠다는 두 학생을 만났다.
한 사람은 잘생긴 여배우 진 액커였고, 다른 한 명은 캐서린 소피 드라이어로서 그녀는 뒤샹보다 열 살이 많았으며 돈이 많아 그의 작품을 수집할 만한 능력을 갖춘 여인이었다.
캐서린은 결혼한 적이 있었지만 그 남자가 유부남이었으므로 그녀의 결혼은 이내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결혼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아렌스버그의 사촌 존 코버트가 1916년에 캐서린을 초대하여 무명사회의 재정을 담당하도록 했는데 그때 캐서린이 뒤샹을 만났다.
그녀는 뒤샹에게 매료되었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로 많은 여자가 뒤샹을 만난 후 캐서린과 같은 증세를 나타냈다.
뒤샹이 무명사회 위원직을 사임할 때 캐서린은 책임자 윌리엄 글랙큰스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뒤샹의 개성과 총명함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또한 그를 좇아서 사임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단히 솔직하며 … 나로 하여금 늘 그의 말을 경청하게 만듭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들 자신의 방법으로 미술을 진전시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캐서린은 열 명의 위원회 심사에서 <샘>을 배척하는 편에 섰는데, 그녀는 뒤샹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것에는 어떤 고유성도 없기 때문에” 배척했다면서 사임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뒤샹의 태도가 단호하자 캐서린은 앙데팡당전의 강의실에 <샘>을 놓고 ‘레디 메이드’에 관해 강의할 것을 요청했는데 뒤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캐서린은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화요일 저녁 뒤샹의 스튜디오로 갈 때 동생 메리를 데리고 갔다.
캐서린은 말했다.
“한 사람에 1달러 50센트였고, 추가되는 사람의 한 차례 강의료는 2달러였어요.
우리는 매우 흥미진진한 프랑스 소설을 읽었고 … 그는 매우 유머가 있었으며, 완전한 프랑스어를 구사하였지요.”
캐서린이 뒤샹에게 호감을 가진 만큼 뒤샹은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캐서린은 12월에 새로운 사실을 알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
뒤샹이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소개한 젊고 예쁜 프랑스 여인 막들렌느 뒤샹과 뒤샹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여인은 막들렌느 뒤샹이 아니라 루엥으로부터 한 달 전에 온 막들렌느 투르반으로 뒤샹과 동거하고 있던 여인이었다.
1918년 1월 장과 이본느 크로티가 1년 만에 파리에서 뉴욕으로 돌아왔는데, 두 사람은 뉴욕으로 오기 한 달 전에 이혼했다.
장은 뒤샹의 동생 수잔느와 염문이 있었다.
뒤샹이 군인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생을 장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한편 뒤샹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이본느는 뉴욕으로 돌아와 뒤샹을 속히 만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가 막들렌느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실망했다.
일주일 후 막들렌느는 뉴욕을 떠났고, 이본느는 곧 뒤샹과 섹스를 했다.
이본느는 로세와도 섹스를 했고, 로세는 아렌스버그의 아내 루이스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몇 여자들과 동시에 섹스를 했다.
뒤샹의 말대로 그들에게는 사랑과 섹스가 별개였다.
그들의 이성 관계는 복잡했지만 공통적인 점은 그들 모두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아렌스버그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만났고, 뒤샹은 모임에서 늘 가장 귀한 손님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