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 사랑과 섹스는 별개이다
뒤샹으로부터 프랑스어를 배운 스테타이머 세 자매는 뉴욕시 북쪽 외곽 테리타운 근처에 있는 별장에서 7월 28일 십여 명을 초대하여 뒤샹의 30회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초대 손님들 중에는 피카비아도 포함되었으며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9개월을 지낸 후 막 뉴욕에 도착했다.
글레이즈 부부와 반 베흐텐 부부도 파티에 참석했고, 희곡작가 애버리 합우드와 레오 스타인도 참석했으며, 페루 대사 마르퀴스 데 부엔나비스타도 참석했다.
젊은 댄서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하는 이사도라의 동생 엘리자베스 던컨도 참석했고, 『장님』에서 편집일을 하는 앙리 피에르 로세도 참석하여 뒤샹을 축하했다.
플로린 스테타이머는 그날의 장면을 <뒤샹의 생일>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그녀는 뒤샹을 주제로 여러 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1923년에 <뒤샹의 초상>을 그렸고, 그해 <마르셀 뒤샹의 초상>을 그리면서 액자 가장자리를 마르셀 뒤샹의 약어 MD로 장식했다.
아렌스버그를 중심으로 모인 예술가들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비트리스 우드는 자신의 첫사랑 앙리 피에르 로세가 자신의 친구 알리사 프랭크와 섹스한 사실을 알고 몹시 화를 냈다.
뒤샹과 피카비아는 우드를 달랠 겸 그녀를 바닷가에 위치한 코니 아일랜드 놀이터로 데리고 갔다.
우드는 그날을 회상했다.
내가 달리는 기차를 타는 것에 겁을 내자 두 사람은 쉬운 것부터 타게 하여 나는 결국 비명을 조절해서 소리 지를 수 있었다.
내가 그러는 것을 그들은 즐거워했다.
나는 마르셀의 팔에 안겨 지옥을 달리는 기차라도 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뒤샹은 우드에게 사랑과 섹스는 별개의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우드는 처녀였기 때문에 뒤샹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 사람은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얼마 후 우드는 처음으로 뒤샹과 섹스를 했다.
그녀는 70년이 지난 후 “그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라고 회상하며 만족해했다.
우드는 1917년에 <이브닝 파티>를 만화처럼 그리면서 피카비아와 뒤샹이 체스를 두고,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는 글레이즈는 무료해 하는 모습으로 두 사람의 체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했다.
우드는 어린 시절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보냈고, 7살 때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갔다.
그녀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면서 사립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녀는 부유한 가정과 보수주의로부터 벗어나 보헤미안 생활을 하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
파리에 거주할 때 그녀는 줄리엥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면서 기베르니에 작업실을 얻었다.
그녀는 댄스에 관심이 많았고, 댄스를 배운 후 1916년 뉴욕에서 데뷔했다.
그녀가 로세와 뒤샹을 만난 것은 인생에 변수가 되었으며, 특히 뒤샹과 코니 아일랜드에 간 것이 그러했다.
아렌스버그의 아내 루이스도 로세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해 여름부터 2년 동안 밀애를 즐겼다.
피카비아는 가브리엘이 눈치를 채든 말든 그해 여름 이사도라를 사랑하느라고 정신을 못 차렸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그는 훌륭한 그림을 그렸고, 훌륭한 시를 써서 아방가르드 잡지 『391』에 소개했는데, 『391』은 그가 뉴욕으로 오기 몇 달 전 바르셀로나에서 창간한 잡지였다.
피카비아는 『장님』을 『391』에 대적할 만한 잡지로 여기고 어느 날 밤 아렌스버그의 집에서 로세에게 체스로 잡지의 우수함을 겨루자고 제의했다.
그날 피카비아가 승리했으며, 『장님』은 2회를 끝으로 폐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