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콘스탄틴 브란쿠시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는 1904년 파리로 갔고 그곳에서 53년을 살았다.
그는 1907년 1월부터 3월까지 메동Meudon에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작업장에서 일했으며 그곳에는 많은 조각가와 조수들이 로댕을 돕고 있었다.
그는 그곳을 떠나면서 “큰 나무 아래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 nothing can grow under big trees”고 했다.
그 해 여름 그는 네 점을 살롱 데 보자르에서 소개했는데, 모두 로댕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것들로 특히 표면의 처리가 그러 했다.
로댕은 표면을 부드럽게 갈고 딱지 않고 거칠게 남겨둠으로써 강렬하고 긴장감이 생기게 했으며 조명을 사용할 경우 인상주의자의 회화처럼 표면에서 동력주의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브란쿠시는 로댕의 이런 점을 받아들였다. 로댕이 전시장에 나타나자 브란쿠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고 청했다.
로댕이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라고 중얼거리자 브란쿠시는 “선생님, 그런 정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하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기를 청했다.
그러자 로댕이 말했다.
“음, 그렇다면 말하겠네. 너무 서둘러 작품을 제작하지 말게.”
브란쿠시는 로댕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인내하면서 좀더 성숙한 작품을 제작했는데 단순히 천천히 작업했다는 말이 아니라 주제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04년 파리로 온 후 브란쿠시는 그리스 철학에 심취했고 특히 플라톤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그는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 형상 혹은 이데아 이론을 알고는 모든 생물체와 광물체가 궁극적인 모델 혹은 이데아에 대한 불완전한 모방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형태를 불완전한 것으로 보았으므로 궁극적인 원형의 모델에 가까운 형상을 생각하게 되었고 상상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나타내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자신의 조각을 “플라톤의 철학”으로 정의한 브란쿠시는 1907~8년 돌조각에 전념하면서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두 종류의 <키스 The Kiss>를 제작했다.
그는 같은 제목으로 1945년까지 여러 점을 약간 다른 형태의 조각을 제작했지만 관념적으로는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브란쿠시의 대표적인 작품 몇 점을 통해 그가 어떻게 추상화했고 그런 과정에서 어디에 중점을 두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