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은 아렌스버그를 중심으로 모이는

피카비아와 가브리엘이 1916년 초 쿠바에서 뉴욕으로 왔다.
이들 부부는 뒤샹이 뉴욕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워했다.
피카비아는 뒤샹에게 여학생들에게 사랑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가브리엘은 “모든 여학생들은 자연히 그의 품에 안기고 말 거예요”라고 했는데 어째 자신의 느낌을 말한 것처럼 들렸다.
가브리엘은 뉴욕에서 만난 뒤샹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마르셀은 부끄러움을 잘 타고 여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려워했는데,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적절하게 처신할 만큼 충분한 경험을 갖추었더군요.
여자를 이용하거나 여자로부터 도망칠 줄 안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그는 더 이상 지난날의 마르셀이 아니라 … 달라졌으며, 아주 매혹적으로 변했어요.

뒤샹이 뉴요커가 된 것이다.
여자를 다루는 데 자신감이 생긴 것은 뉴요커 친구들로부터 배운 것이며, 그도 뉴요커가 되어 독한 술을 마셨고, 취중에 여자와 대화하는 일이 잦았다.
“사무실에서, 레스토랑에서, 그리고 집에서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독한 술을 마시더군요”라고 가브리엘이 말했다.
가브리엘은 술에 취한 여자가 남자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로 가는 장면을 보고 경악했다.
뉴욕은 파리와는 전혀 다른 도시였고, 뒤샹은 뉴욕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뒤샹보다 여섯 살 많은 글레이즈는 뒤샹의 보호자인 양 행세했는데 그는 위스키와 칵테일에 맛을 들인 뒤샹을 종종 나무랐다.
글레이즈의 아내 줄리엣은 뒤샹이 그런 남편에게 한 말을 기억했다.
“사랑하는 글레이즈 선생,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오래 전에 자살했을 겁니다.”

뒤샹은 뉴욕생활에 적응하느라고 남모르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술을 마신 것 같다.
술은 그에게 극복의 처방이었다.

뒤샹은 아렌스버그를 중심으로 모이는 예술가들 그룹에서 스타로 부상했다.
그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 67번가 웨스트 33번지에 있는 아렌스버그의 집에서 만났는데 뒤샹의 프랑스식 위트와 아이러니를 모두들 좋아했다.
그들은 저녁식사를 한 후 보통 9시부터 자정까지 대화했다.
아렌스버그의 그룹에 속한 예술가들은 찰스 실러, 조셉 스텔라, 찰스 데머스, 모턴 리빙스턴 샴버그, 존 코버트(아렌스버그의 사촌), 만 레이였고, 시인과 작가들로는 윌리엄 카로스 윌리엄스, 왈라스 스티븐스, 알프레드 크레임부르그, 월터 패츠, 맥스웰 보덴하임, 알렌과 루이스 노턴 부부, 칼 반 베흐텐과 반 베흐텐의 잘생긴 아내이자 영화배우인 파니아 마리노프, 그리고 아렌스버그의 하버드대학 동창생 어네스트 사우타드였는데, 사우타드는 심리학 박사로 보스턴 정신병원의 책임자였다.
사우타드는 뉴욕에 올 때마다 그룹에 참석했는데 그룹의 예술가들은 그를 만나면 꿈에 관해 대화하기를 즐겨했다.
그들은 만나면 천장이 높은 커다란 방에서 체스를 두었는데 아렌스버그와 사우타드는 하버드대학 체스팀에 속한 적도 있었으며, 크레임부르그는 직업 체스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었다.
체스를 좋아하는 뒤샹은 거의 매일 밤 체스에 몰두했고, 질 때보다는 이기는 경우가 조금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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