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 만 레이와의 만남
1890년 8월 27일 러시아에서 펜실베이니아 주의 필라델피아로 이민 온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만 레이는 본명이 많아서 어느 것이 실제 본명인지 알 수 없는데, 알려진 본명들을 열거하여도 엠마누엘 루드니츠키, 엠마누엘 라덴스키, 엠마누엘 라비노워츠, 레이몬드 만델바움, 미카엘 라드니즈키 등이다.
재단사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다시 뉴욕으로 이주했으므로 만 레이는 1904년에 브루클린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잠시 건축을 공부하다가 1910년부터 그는 수년 동안 맨해튼의 할렘에 있는 페러센터, 국립 아카데미 디자인, 그리고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수학했는데 건축설계에 관심이 많았다. 이 시기에 그는 진보주의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그가 1913년에 그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초상>을 보면 입체주의 방법을 응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일찍이 그는 유럽의 회화경향에 관심이 많았다. 2년 동안 입체주의를 실험한 그는 아모리 쇼에 출품하고 그룹전에 참여하는 등 기민하게 활동했으며, 아모리 쇼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해 5월 그는 벨기에인 아돈 라크로아를 아내로 맞아 뉴저지 주의 리치필드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는데 그곳에 예술가와 작가들이 많이 거주했다.
그가 만 레이Man Ray로 서명하기 시작한 것은 1914년부터였다.
그는 회화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진, 콜라주, 조립, 영화, 조각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려고 했으며, 이 시기에 그는 기계주의 미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1915년은 그에게 중요한 한 해였다.
그해 만 레이는 다니엘 화랑에서 처음으로 사진 개인전을 가졌으며, 평생 영원한 우정을 맺게 될 뒤샹을 만났다.
아렌스버그는 초가을 뒤샹과 크로티를 데리고 리치필드로 가서 『어더스』의 편집자 알프레드 크레임부르그와 리치필드로부터 5마일 떨어진 루더포드에 거주하는 시인 윌리엄 카로스 윌리엄스 그리고 화가 사무엘 할퍼트에게 소개했다.
그곳에는 안면 있는 만 레이와 그의 아내도 있었다.
뒤샹은 『어더스』에 속한 다른 예술가들도 만났는데 만 레이가 그룹의 예술가들 중 가장 말을 빨리하는 것을 그날 알았다.
만 레이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데다 뒤샹의 영어가 매우 서툴렀기 때문에 뒤샹과 만 레이는 이내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날 오후 만 레이와 뒤샹이 크레임부르그의 별장 평편한 마당에서 즉흥적으로 가진 테니스 게임 이후 두 사람의 우정은 평생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