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왜 뒤샹이 그것을 샀을까?

장 크로티가 1915∼1916년 겨울 뒤샹의 스튜디오를 함께 사용했다.
크로티는 1878년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의 동네에서 태어나 1896년 뮌헨으로 가서 회화를 공부했으며, 1900년에 파리로 와서 마르세유에서 무대 디자이너의 조수로 일했다.
그는 이듬해 줄리엥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며 이 시기 다른 젊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예술가들의 회화방법을 실험했다.
그는 계속해서 파리에 거주하면서 작업실을 몽마르트의 콜리안쿠르에 장만했는데, 뒤샹의 작업실 건너편 불과 몇 집 떨어진 곳이었다.
두 사람은 1901년의 앙데팡당전과 가을전에 함께 출품하면서 우정을 나누게 되었는데 뉴욕에서 재회하게 되자 몹시 반가웠다.
크로티는 풍경화를 반추상으로 그리다가 1916년부터 기계와 같은 이미지로 그리면서 기계에 성sex을 부여했고, 철사나 쇠, 유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마르셀 뒤샹의 초상>을 조각으로 제작했는데, 쇠에 색을 칠하고 유리를 사용해서 눈을 장식했다.
그는 “그것은 마르셀 뒤샹에 대한 나의 절대적인 표현이다”라고 했다.
그 조각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모르나 현존하지 않는다.

뒤샹이 컬럼버스 애비뉴에 있는 철물점에서 눈을 치울 때 사용하는 눈삽을 구입했을 때 크로티도 옆에 있었다.
눈삽은 미국의 어느 철물점에서라도 구입할 수 있는 흔한 것이다.
왜 뒤샹이 그것을 샀을까?
뒤샹과 크로티는 그런 삽을 과거에 본 적이 없었다.
프랑스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뒤샹은 눈삽을 스튜디오로 가지고 와서 물감으로 <부러진 팔에 앞서서>라고 제목을 적은 후 ‘from Marcel Duchamp 1915’라고 서명했다.
그는 by라고 쓰지 않고 from이라고 적었다.
그런 후 손잡이를 철사에 묶어 천장에 매달았는데, 그가 미국에 와서 처음 발견한 혹은 선정한 레디 메이드 조각이었다.
뒤샹은 수잔느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내 화실에 가게 되면 자전거 바퀴와 병걸이를 보게 될 것이다.
병걸이는 레디 메이드 조각으로 내가 구입한 것이다.
여기 뉴욕에서 나는 같은 특성을 지닌 물건들을 구입하여 레디 메이드로 취급하고 있단다(처음으로 영어로 ready made란 말을 사용했다).
네가 영어 ready made의 뜻을 이해할 줄 안다.
난 영어로 제목과 이름을 적어 넣는다.
예를 들면 커다란 눈삽에 ‘부러진 팔에 앞서서’라고 적었는데 프랑스어로 En avance du bras casse가 될 것이다.
그것을 낭만주의나 인상주의 또는 입체주의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것들과는 무관하단다.
다른 레디 메이드 조각은 <두 번에 걸친 비상사태>인데 프랑스어로는 Danger (Crise) en faveur de 2 fois이다.
이런 머릿말들은 실제로 말하기 위해서이다.
병걸이를 집으로 가져가거라.
먼 이곳에서 난 그것을 레디 메이드 조각으로 만들려고 한다.
병걸이 바닥 안쪽 둥근 곳에 은색과 흰색을 사용하여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어주길 바란다.
From Marcel Duchamp

수잔느에게 준 뒤샹의 지침은 이미 때가 늦었다.
오빠의 화실을 청소하다가 자전거 바퀴와 병걸이를 발견하고 수잔느는 쓰레기로 알고 내다버렸다.
현재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미국의 필라델피아 뮤지엄에 있는 <자전거 바퀴>와 <병걸이>는 뒤샹이 제작한 본래의 것들이 아니고 나중에 재생한 것들이다.
뒤샹이 편지에 언급한 <두 번에 걸친 비상상태>는 눈삽과 마찬가지로 그가 구입한 것인데,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이 없고 현존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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