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 무엇이 미술인가

뒤샹은 별로 말이 없이 듣는 편이지만 일단 말을 하게 되면 낮은 목소리로 조리 있게 했다.
뉴욕으로 온 후 그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자유를 만끽했고, 과거로부터 단절된 자유를 맛보았다.
그는 말했다.

파리와 유럽에서는 어느 시대에서라도 젊은이들은 늘 자신들을 어떤 위대한 사람들의 손자들쯤으로 생각한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빅토르 위고의 손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영국의 젊은이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손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회의 조직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며, 그들이 자신들의 창의력을 산출하려고 하더라도 파괴할 수 없는 전통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점이 미국에는 없다.
당신은 셰익스피어 따위에 관심이 없지 않느냐?
그렇지 않느냐?
당신에게는 그의 손자란 느낌이 전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진전시키기에 이곳보다 더 훌륭한 곳은 없다.

뒤샹은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욱 훌륭하게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뮌헨에서 <큰 유리>에 관하여 습작을 할 수 있었듯이 그에게는 프랑스가 아닌 신천지가 필요했고, 미국은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축복의 땅으로 여겨졌다.

뒤샹은 뉴욕에서 새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첫 인터뷰를 한 『뉴욕 트리뷴』의 편집자 브루어는 여간 고마운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비교적 훌륭한 분위기의 싸구려 술집과 레스토랑과 기자들이 출입하는 곳을 뒤샹에게 소개했으며, 유행어도 가르쳐주었다.
브루어는 “제가 처음 뒤샹을 만났을 때 그는 영어를 몇 마디밖에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꼭 영어로 대화하기로 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 응하다보니 뒤샹은 미국인들에게 피카소나 마티스보다 더욱 인기가 있었다.
그는 뉴욕에 3년 동안 머물면서 자신의 작품에 관해 말하지 않았으며, 명예와 돈을 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일로 수입을 늘여나갔다.
“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으며, 당시에는 모든 물가가 쌌다. 5달러면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아렌스버그가 9월에 코네티컷 주에서 뉴욕으로 돌아오자 뒤샹은 그의 아파트를 나와 빅만 플레이스에 있는 패츠의 집 건너편 집을 세 얻었다.
석 달 후에는 65번가와 66번가 사이 브로드웨이 1947번지의 링컨 아케이드 빌딩으로 옮겼다.
스튜디오지만 면적이 작지 않아 작업실로 쓸 만했다.
거처를 옮기자마자 그는 큰 유리 두 장을 사서 받침대를 만들어 세웠는데 <큰 유리>를 위한 습작을 파리에서 마친 후라 본격적으로 작업을 개시할 수 있었다.
집세가 월 40달러였으므로 그는 따로 직업을 가지고 수입을 늘여야 했다.
파리의 도서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그를 퀸이 이스트 36번가에 있는 모건의 커다란 개인도서관의 책임자 벨레 다 코스타 그린에게 소개했다.
퀸은 뒤샹에게 “그 여자는 건방진 미국인이지만 그것 때문에 수줍어할 필요는 없네.
그녀가 자네를 물어뜯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귀뜸했다.
뒤샹은 11월 5일에 그녀를 만나 매일 오후 4시간씩 일하고 월 100달러를 받기로 했다.
앞으로 2년 동안 그는 경제적으로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유리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먼저 윗부분에 납으로 된 철사를 사용하여 은하계처럼 생긴 형상을 만들었고, 신비스럽기만 한 로봇처럼 생긴 신부를 만들어 부착했으며, 종이에 드로잉한 것을 유리 뒷면에 부착시킨 뒤 작업했다.
그는 철사로 만든 형상 안에 색을 칠한 뒤 납으로 얇게 덮어 산화를 방지했는데, 이는 납 성분에 관하여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납은 오히려 화학적으로 색소에 반응을 일으켜 결국 변색시켰다.
그는 하루에 두 시간씩 작업했다.
그는 회상했다.
“나는 그런 작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서둘러 마쳐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난 게으른 사람이다.
게다가 그때 난 그것을 전시회를 통해 소개하거나 팔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난 그저 작업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다.
나는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나면 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외출하여 미국에서의 인생을 즐겼다.
나는 미국을 처음 방문한 것이라서 <큰 유리>를 작업하는 것만큼이나 미국을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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