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은 영어를 거의 몰랐고
아렌스버그의 아파트에 당도했을 때 뒤샹은 마치 파리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화랑처럼 커다란 방에는 피카소, 브라크, 브랑쿠시 등과 퓌토의 예술가들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글레이즈와 형 자크 비용의 그림이 벽에 걸린 것을 보았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마티스의 <이본느 랜스베르그의 초상화>는 아렌스버그가 몽트로스 화랑에서 구입한 것인데, 패츠가 그곳에서 마티스를 위한 전시회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아렌스버그는 휴가를 마치고 뉴욕으로 와서 뒤샹을 만났다.
이내 그는 뒤샹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데, 이는 패츠로부터 뒤샹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렌스버그의 친구는 “뒤샹이 그의 엔진을 가동하게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아렌스버그는 그날의 만남 이후 뒤샹의 친구이자 경제적 후원자가 되었다.
뒤샹은 뉴욕으로 와서 지낸 수개월을 여든 살이 된 말년에도 여전히 즐거웠던 시절로 회상했다.
뒤샹은 영어를 거의 몰랐고, 패츠와 아렌스버그가 안내하는 대로 뉴욕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하루는 패츠의 안내로 그리니치 빌리지에 갔는데 그는 “빌리지는 정말 보헤미아 같았다.
그곳이 유쾌한 곳이었던 이유는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최소한 마약이라도 복용하지만 … ” 하고 회상했다.
빌리지에는 예술가와 과격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살았는데, 그들이 빌리지에 모여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집세가 싸고, 질 좋은 저녁식사와 포도주 한 잔을 1달러 미만에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패츠와 아렌스버그는 뒤샹을 만나면 프랑스어로 말했는데, 아렌스버그는 “우리 세 사람이 프랑스어로 말할 때면 마치 참새들이 연못 주위에서 조잘거리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뒤샹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좀더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돈도 벌 수 있는 수지맞는 일이 생겼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면서 시간당 2달러를 벌게 된 것이다.
패츠와 아렌스버그가 소개한 사람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뒤샹의 학생이 되었는데 그 중 존 퀸은 최고의 학생이었다.
변호사로 미술품을 수집하는 그는 수업이 끝나면 뒤샹을 데리고 주로 레스토랑과 극장으로 갔다.
당시 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미술품들에 부과하던 세금을 철폐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기 때문에 돈 잘 버는 퀸은 유럽 예술가들의 작품을 더욱 수집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작가친구와 시인친구들이 많았으며 래디 그레고리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도 우정을 나누었다.
그는 주로 조지 러셀 그리고 잭과 존 버틀러 예이츠로부터 미술품을 구입했다.
잭과 존은 시인 예이츠의 형과 아버지였다.
퀸은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예술가들의 그림을 수집했으며, 마티스, 피카소, 브랑쿠시, 그리고 레이몽 뒤샹 비용의 조각도 가지고 있었다.
패츠가 그를 뒤샹에게 소개했는데 뒤샹이 뉴욕에 온 지 한 달이 지난 7월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1>을 포함하여 뒤샹의 그림도 여러 점 구입하였다.
퀸은 뒤샹을 『이브닝 선』의 미술평론가 프레데릭 제임스 그렉과 예술가 발트 쿤 그리고 장느 로버트 포스터에게 소개했다.
장느는 당시 퀸의 애인이었고, 평생 독신이었던 퀸에게는 예쁜 여자친구들이 많았다.
뒤샹이 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할 무렵 피카비아는 장인의 친구 되는 장군의 도움으로 편한 보직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군대에서 사용할 설탕과 당밀을 구입하는 임무를 띠고 쿠바로 가던 중 그가 탄 해군 소속 배가 뉴욕 항에 잠시 정박하게 되자 곧장 브레부르트 호텔로 가서 스티글리츠와 2년 전 아모리 쇼를 참관하기 위해 왔을 때 사귄 친구들을 만났다.
그는 데 자야와 협력하여 아방가르드 잡지 『291』의 제2호를 발간했는데 『291』은 스티글리츠 화랑의 주소를 따서 간행하기 시작한 잡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