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내가 드로잉할 줄 알았다면 … ”

전람회를 자축하는 파티에서 폴록은 술을 마셨고, 건넌방에 있는 드 쿠닝에게 소리를 질렀다.
“빌, 너는 배신했다. 넌 사물들을 그렸고, 여전히 그 빌어먹을 것들을 그리고 있다. 넌 사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입장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드 쿠닝은 “넌 무엇을 하는데, 잭슨?”이라고 대꾸했는데 그것은 2년 전부터 폴록의 그림에서도 사물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해서 한 말이었다. 
 

폴록은 그곳을 빠져나와 술집으로 향했다.
폴록은 술집에 들어서더니 어느 사내와 눈을 흘기다가 격투를 벌이고는 술집을 나와 길모퉁이에 잠시 서 있더니 달려오는 차 앞을 획 지나갔다.  

차는 불과 몇 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그에게 다가왔으나 그는 무사했다.

이 시기에 폴록은 중요한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진전 없는 그림들이었다.
그는 리더러 화실로 오라고 한 후 “이게 그림이냐?”고 자신이 막 그리다 만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폴록은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으며 자신감도 상실했다.
그는 자살에 관해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술을 마셔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는 또 이스트 햄프턴 경찰서에 자주 끌려갔다.
하지만 그가 잘 알려진 예술가임을 아는 경찰관들은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경찰서 기록에는 폴록이 차로 반대편 노선을 침범한 후 길가에 주차한 채 보도에 인사불성으로 누워 있었다고 되어 있다.

폴록은 개성이 강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그에게도 여인의 품에서 위로받고 싶은 여린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사 삼손도 데릴라의 품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는가보다.
폴록은 술을 마시고나면 고독감에 몸부림쳤고,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고 울고만 싶어졌다.
어느 날 밤 그는 근래에 이웃으로 이주해온 실 로드라는 예술가에게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갔다가 술을 마신 후 그만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늙었어!”라고 폴록은 반복해 말했고 그녀는 따뜻한 손으로 폴록의 머리를 감싸며 그를 위로했다.
폴록은 다른 좌석에서 자신은 무능하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드로잉도 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며 괴로워했다.

어느 날 셀덴 로드만이라는 작가가 방문하여 폴록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로드만과 그의 아내 마이아가 폴록에게 그림을 보여달라고 하자 그들을 화실로 안내했는데 화실 문은 잠겨 있었다.
폴록은 창문을 두 개 부순 후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었다.
얼마 후 로드만은 집안으로 갔고 화실에는 폴록과 마이아만 있었는데 폴록이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폴록이 엉엉 울면서 자제하지 못하자 마이아가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주었다.
폴록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폴록은 벽에 기대어 있는 그림들을 가리키면서 “내가 드로잉할 줄 알았다면 이 따위 형편없는 그림들을 그렸겠어요?”라고 말한 뒤 다시 울었다.
폴록은 솔직한 예술가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자 부쩍 더 자신은 “위대한 예술가”라고 반복한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그는 포드 자동차를 타고 로젠버그의 집으로 갔다.
그는 정원에 선 채 집을 향해 “시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다!”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로젠버그는 창을 통해 그를 보았다.

이 시기에 드 쿠닝은 이스트 햄프턴의 제리코 거리에 있는 레오 카스텔리의 커다란 집 한켠에 화실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카스텔리가 그를 후원했기 때문이었다.
드 쿠닝을 찾는 방문객들 가운데에는 로젠버그를 비롯하여 콘래드 마카-랠리, 필립 페이비어, 윌프리드 족바움, 클라인, 마더웰, 그리고 젊은 작가들이 있었다.
폴록이 조용한 여름을 지내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1953년 여름 폴록은 세 점을 그렸는데 개인적인 감성을 나타내느라고 주로 회색을 사용하여 그림의 분위기가 음침하고 애수적이었다.
그는 <회색빛 대양 Ocean Greyness>(111)에서 많은 눈동자들과 가면 같은 색의 섬을 묘사했다.
늘 그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존 리틀 부부, 오소리오 등이었으며 이따금 낯선 사람들이 폴록을 찾아왔다.

8월에 재니스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그림에 더 이상 번호를 매기지 말고 전처럼 제목을 붙이라고 말했다. 부채가 늘어가고 있었으므로 그림을 팔기 위해서라도 그는 재니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름에 몇 차례 친구들의 방문도 있었다.
드 쿠닝, 클라인, 필립 페이비어가 그들이었는데, 리는 그들이 잭슨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했다.
어떤 때는 리가 현관에서 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폴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는 그들을 “뉴욕의 갱들”이라고 불렀다.
리가 집에 없을 때면 폴록은 그들을 오라고 해서 함께 술도 마시고 포커 게임도 하면서 다음날까지 지냈다.

어느 날 폴록은 만취한 채 레오 카스텔리의 화랑으로 가서 드 쿠닝이 어디에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잭슨이 그럴 때면 우리 모두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카스텔리가 상기했다.
카스텔리의 아내는 폴록이 들어서자 부서지기 쉬운 물건들을 감추었으며 드 쿠닝은 몰래 달아나기도 했다.
폴록은 하마터면 카스텔리가 의뢰하여 래리 리버스가 제작한 콘크리트 조각을 부술 뻔하기도 했다.
1953년 가을 폴록은 유난히 외로움을 느끼면서 방문객들에게 자살에 관해 말했으며, 정신과 의사 웨인 베이커를 몇 차례 방문하면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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