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은 로젠버그로부터 이러한 말을
1949년 로젠버그는 샘 쿠츠의 화랑에서 열렸던 전람회를 위해 글을 쓰면서 “현대의 화가는 무(無)에서 출발해야 하고 … 단지 이것만이 모방일 뿐 그외의 것들은 발명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그때에는 그의 말이 작가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1950년대 초에 뉴먼과 스틸이 과격한 개성주의 회화를 추구하면서 그의 말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였다.
폴록은 로젠버그로부터 이러한 말을 자주 들어왔으며, 어떤 의미에서 폴록이야말로 가장 로젠버그다운 예술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폴록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 그림은 그것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난 그것이 스스로 존재하도록 할 뿐이다”고 말했는데 이는 로젠버그가 환호하며 반길 만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드 쿠닝, 마더웰, 바지오츠, 고키는 너무 기교에 의존하면서 유럽 모더니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로젠버그는 폴록의 그림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음주벽과 술을 마시면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의 비지성적인 점 때문에, 또는 도대체 고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그의 그림들을 의도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려 했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그의 라이벌 그린버그가 폴록을 옹호하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그를 칭찬하지 않는 소인 같은 태도를 취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폴록을 두둔하고 싶었지만 폴록이 진지함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도 추측된다.
폴록이 고작 신비주의에 빠져서 그림을 그렸으므로 그에게는 “아주 쉽게 그린 그림”으로 보였을 것이고 그런 그림들을 대작이라고 칭찬하기에는 로젠버그의 지성이 허락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로젠버그와 폴록이 한 쌍으로 열애하지 못했던 것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성격에도 원인이 있었다.
로젠버그는 “화가는 배우가 된 이상 그는 행위의 대사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고 “화가의 개인적인 투쟁이 결여된 그림은 단지 계시적인 벽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신비주의를 지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신비주의가 행위의 감각에 혼돈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그러한 그림은 대화가 단절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하면서 그러한 예술가들을 “미술계에 살고 있는 귀신들”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가 말하는 귀신들에는 폴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폴 브라크는 “내 생각에 네가 잭슨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그런 글을 쓴 것 같다”며 그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로젠버그는 그에게 “넌 아주 영리하다”고만 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그림보다는 예술가의 행위에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롬 캄로우스키는 그의 글은 “개똥들로 가득 차 있으며, 회화에 관해 말하는 것인지 사회적인 사건들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그를 비난했다.
니콜라스 카론은 “그의 글은 대부분 거짓말들로 차 있다”고 말했다.
리는 로젠버그의 글을 읽고 로젠버그 부부가 폴록과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했다고 흥분했다.
리는 그를 공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궁리를 했다.
먼저 그녀는 그린버그를 떠올려보았는데 그는 이상할 정도로 침묵했다.
리가 그린버그를 재촉하자 그는 로젠버그의 액션 페인팅을 “순전히 수사학상의 거짓말”이라고 말하면서도 리에게 “넌 싸울려면 네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싸워야지, 난 해롤드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만 말했다.
그린버그는 제임스 존슨 스위니가 자신의 평론을 좋아하지 않으며, 로젠버그가 존경받는 평론가로 막 부상하고 있는 이러한 시기에 그를 공개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로젠버그가 공격하는 사람은 폴록이지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폴록이 자신에게 “멍청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에 대한 불쾌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터였다.
리는 로젠버그가 사용했던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이 원래는 폴록이 사용했던 말인데 그가 도용한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로젠버그는 “잭슨이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그의 입에 그러한 아이디어를 넣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러한 말조차도 부인하면서 자신은 누구로부터도 아이디어를 구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폴록의 그림들을 “원숭이가 그린 그림들 같다”고 빈정거렸다.
로젠버그의 아내 메이는 “리가 잭슨만 빼고는 모든 사람들을 망치려고 한다”고 투덜거렸고, 리는 메이를 “미친 년!”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메이는 리를 “돈만 아는 파렴치한 여자”라고 보복했다.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으며 한때는 한 아파트에 살던 사이였는데 이제 그들은 멀어지고 있었다.
리는 로젠버그와 드 쿠닝만 미워한 것이 아니라 폴록의 평판에 거슬리는 모든 작가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미술계에 속한 사람들은 리를 위해서 폴록을 지지하든 대적하든 양자택일해야 했다.
로젠버그는 브르통처럼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했으며, 화가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이는 지성인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평론분야에서 독주하던 그린버그의 권위주의적 비평으로부터 벗어나 이제 추상에 대한 다른 견해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린버그는 오만하기도 했는데 예술가들에게 이러저러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대놓고 말했으며, 래리 리버스를 제거했다.
또한 그는 무엇이 좋은 그림이고 무엇이 나쁜 그림인지를 판단하려고 했고 누가 훌륭한 예술가이며 누가 훌륭하지 않은지를 구별하려고 했다.
예술가들은 그의 독선에 은근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시다 술집에서 밀턴 레스닉은 “그린버그는 전람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면서 어떤 예술가에게 그림을 거꾸로 걸게 하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 후 상을 주었다”면서 그의 독선에 화를 내었다.
레즈닉은 어느 날 그린버그에게 “시팔놈, 난 다시는 너와 함께 합석하지 않겠다”고 말한 후 그의 테이블을 떠났는데 그때 다른 작가들도 그와 행동을 함께 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용기 있는 태도에 갈채하며 지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