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형 같은 바넷 뉴먼
1952년 가을에 폴록은 바넷 뉴먼과 클리포드 스틸을 자주 만났다.
뉴먼은 코메디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보이는 외양을 하고 있었다.
맞춤 양복에 셜록 홈즈 모자, 외알 안경을 낀 그는 덩치가 컸고 해마 수염을 한 데다가 유순한 얼굴에 잘 웃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익살스러워 보였다.
그는 1945년부터 진지하게 그림을 그렸으며 마더웰과 마찬가지로 박식한 지식을 시위하기를 좋아했다.
뉴먼은 캔버스에 수직으로 선을 긋고서는 그것을 집(zip)이라고 불렀다.
그의 그림들이 1950~51년에 파슨즈의 화랑에서 소개되었을 때 평론가와 일반인들은 그의 그림이 웃긴다며 조소했다.
그가 출판한 책 『미학적 철학 Aesthetic Philosophy』도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도로시 밀러는 모마에서 ‘열다섯 명의 미국 예술가들’ 전람회를 개최하면서 뉴먼을 제외시켰는데 이를 두고 뉴먼은 밀러에게 몹시 화를 냈다.
그린버그는 “뉴먼은 어린애처럼 한두 번의 전람회로 유명해질 수 있으며 그림도 많이 팔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전람회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먼은 파슨즈 화랑으로부터 자신의 그림을 철수하면서 다시는 뉴욕에서 전람회를 갖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에 무심했으며 그림을 팔든 못 팔든 개의치 않고 오로지 순수한 미학적 아방가르드 정신을 고집하면서 그 특유의 그림에만 전념했다.
폴록에게는 마흔일곱 살의 뉴먼이 형처럼 느껴졌다.
뉴먼은 폴록에게 술을 마시지 마라든가 또는 적게 마시라는, 그래서 용기를 잃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폴록은 그를 따랐다.
뉴먼의 아내 애널리는 돈을 잘 벌었으며 남편이 새 양복을 사는 것을 불평하지 않았고 그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또 그가 아직 미술계의 그늘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나무라지 않았다.
폴록은 애널리를 아내를 둔 뉴먼을 부러워했는데 그런 아내를 둔 사내를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뉴먼은 폴록에게 자신의 역할은 호크너와 헤밍웨이가 미국문학을 되살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회화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폴록을 몬드리안과 비교하면서 몬드리안의 “기하(완전함)가 그의 형이상학을 삼켜버렸다”고 말하고 회화는 완전함에 관한 것이 아니며 “무한의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린버그는 그러한 뉴먼의 그림을 가리켜 “바니(뉴먼의 애칭)는 캔버스에 아주 작은 것을 그려서 광대한 내용을 일반화함으로써 헤스로 하여금 그것에 관하여 글을 쓰게 했다”고 적은 적이 있다.
뉴먼에게 회화는 회화가 아니라 의식(ritual)과도 같았으며, 형이상학 또는 신비적 상황과도 같았다.
폴록은 뉴먼의 아이디어나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는 “난 바니의 그림들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윌콕스에게 말하면서 “뉴먼은 그저 좋은 친구다. 난 그가 좋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