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런 해프닝이 있은 후 이틀이 지나고 폴록은 뉴욕에 가서 내일 시작되는 자신의 전람회를 준비했다.
전람회는 파슨즈 화랑에서 11월 28일에 시작됐다.
그의 그림 서른두 점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화랑을 채웠는데 어떤 사람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곳에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폴록의 형 제이도 왔고, 리는 문 앞에 서서 연신 미소를 띄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물론 그녀는 틈틈이 폴록의 거동을 살피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폴록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평론가 토마스 헤스는 “잭슨이 남겨놓은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고 적으면서 그가 추락하게 된다면 그것은 완전한 추락일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폴록은 자신이 추락하리라는 위기감을 느꼈지만 그에게는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두렵게 느껴졌다.
그것은 위대한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술로 번민을 줄여보려 했지만 술은 기름과도 같아서 번민이라는 화염을 더욱 태우는 법이다.
폴록이 술에 취한 채 친구 조 미르트의 집으로 가서는 “나 좀 들여보내줘. 갈 데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기에 늦은 시각이면 그는 술집에서 옛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난 위대한 예술가야. 내가 잭슨 폴록이고 위대한 예술가야!”라고 말했다.
친구의 아내는 “난 네가 렘브란트라도 상관하지 않겠어. 밤중에 전화하지 말아야지!”라고 대꾸했다.

그가 추락하는 징조가 나타났다.
그린버그의 말은 적중했는데 우선 전람회에서 그의 그림이 팔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람회에 와서는 유명한 예술가를 직접 보려고 했지 그의 그림을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상에 오른 예술가의 그림값이 비싼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라벤더 안개>(102)는 4,000달러였고 는 5,000달러였으며  <하나 One >와 <가을 리듬>은 각각 7,500달러였다.
아주 작은 그림에도 300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베티는 전람회가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서른두 점 가운데 <라벤더 안개>만 팔렸는데 그것도 오소리오가 깎아서 1,500달러에 구입했으므로 대단한 수치였다.
“내게 그 일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았다”고 베티가 말했다.

그날 밤 폴록은 그린버그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당신이 나에 대하여 여태까지 쓴 것들이 나에게는 빌어먹을 이익이 되지 않았다.
난 어리석게도 당신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는 시드니 재니스에게 전화를 걸어 “나 잭슨 폴록이오. 난 당신이 내 그림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한 점도 사지 않았소?”라고 물었다.
전람회에 대한 사람들의 침묵이 폴록에게는 고문처럼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폴록이 추락을 예감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도 드 쿠닝은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드 쿠닝의 캠프”와도 같았다.
그들은 8번가에 있는 시다 술집에서 만나곤 했다.
시다에는 당구대가 없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뮤직 박스가 없었으며, 텔레비전이 없었다.
그곳에는 예술가들이 진지하게 토론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소음들이 없었으므로 예술가들에게는 안락한 곳이었다.
그리고 창이 있어서 술집 밖에서도 안에 누가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창을 들여다보면 클라인이나 구스턴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드 쿠닝과 헤스, 또는 그린버그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래리 리버스와 로젠버그가 있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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