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시작된 폴록의 추락

 

1950년 폴록의 그림들이 제 2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소개됐는데, 그해 11월 20일자 『타임』 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잭슨 폴록의 추상화는 보통사람들이나 전문가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보통사람들은 그가 물감을 흘려서 그린 미로와도 같은 그림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를 모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그에 관해서 뭐라고 써야 좋을지를 모르고 있다.

주말에 그린버그가 스프링스로 와서 폴록이 다음 전람회를 위해 그린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폴록은 그린버그를 이스트 햄프턴 역까지 바래다주었는데 두 사람은 차에 앉은 채 기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폴록은 그날 유난히 풀이 죽어 있었다고 그린버그는 회상했다.
“잭슨은 무엇인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가올 전람회에 관해 대화했다.
그린버그는 폴록에게 다음 전람회는 여태까지보다 더 훌륭한 전람회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폴록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기차가 도착하자 그린버그는 폴록에게 굿 바이라고 하면서도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 역시 무엇인가가 나쁠 것이란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추수감사절 오후인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폴록은 돈도 참을성도 좋은 날씨도 그에게 남아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날은 11월 25일 토요일이었고 맑고 쌀쌀한 날씨였다.
나무스는 폴록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해야 했고, 정거장에 서 있는 폴록은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웠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함을 나무스는 볼 수 있었다.
“이제 끝났다. 아주 잘 됐어. 아주 훌륭했어요”하고 나무스는 11분짜리 컬러 영화의 촬영을 마치고 소리쳤다.
폴록은 집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고 있었다.
리는 조금 늦었지만 칠면조를 굽고 있었다. 촬영을 마친 것도 자축할 겸 8시에 시작될 저녁식사에 리가 사람들을 초대했다.
폴록은 말없이 응접실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버번 위스키를 잔에 가득 따르고는 “한스(나무스), 이리 와서 나와 함께 한잔하자!”고 소리쳤다.
폴록이 두 잔을 연거푸 마시자 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폴록은 “2년 만에 처음 마시는 술이야”라고 소리쳤고 나무스는 미련한 짓 하지 말라며 그를 말렸지만 폴록은 계속 마셔댔다.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부휘 존슨이 자기 집에 와서 한잔하자는 내용이었다.
폴록은 곧 가마고 대답했다.

이때 리가 초대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족바움 부부, 존 리틀, 알폰소 오소리오였다.
폴록이 나무스에게 “넌 사기꾼이야!”라고 말하자 “난 사기꾼이 아닙니다. 당신이 사기꾼입니다”라고 나무스가 대꾸했고, 리는 두 사람을 말리면서 다들 식탁에 와서 앉으라고 권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계속했는데 갑자기 폴록이 벌떡 일어서더니 “넌 내가 사기꾼인 줄 아는데 내가 사기꾼이 아니고 네놈이 사기꾼이다!”라고 말하면서 탁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칠면조가 식탁에서 떨어지면서 바닥에 뒹굴었다.
리는 그것을 주워서 씻은 후 도로 식탁에 가져다놓았다.

폴록은 다시 식탁을 들어올렸다.
접시, 컵, 그릇,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커다란 대접들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면서 커다란 소리를 내었다.
마지막 접시가 때굴때굴 구르다가 멈추자 침묵이 시작됐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폴록은 부엌 뒷문을 꽝 하고 닫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아마 존슨의 집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리가 무안해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자, 커피는 거실에 가서 마시도록 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왜 폴록이 과음하기 시작했는지에 관해 의견들을 나누었다.
그들은 지난 2년 동안 정상에 올랐던 그가 과음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필자의 의견은, 정상에 오른 사람은 추락을 두려워하며 그때를 먼저 감지하는 것도 정상에 오른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높이 올라가는 데 가속이 필요한 만큼 추락하는 데에도 가속이 작용한다.
백남준 역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점을 지적하면서 예술가는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까 봐 조심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일렀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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