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아서 도브는 물질적인 요소보다는 정신적인 요소를

아서 도브도 1907년에 파리로 가서 일찌감치 모더니즘을 받아들인 예술가였다.
그가 1910년에 그린 <추상 No.1>은 빌딩과 풍경의 모습이 시사되었지만 칸딘스키의 사물의 묘사가 배제된 그림과 매우 유사했다.
그해 그린 <추상 No.2>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림에서 물질적인 요소보다는 정신적인 요소를 힘 있게 나타내려 하였다.
그는 1920년대에 많은 진보주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르동과 미국 낭만주의 회화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피카비아가 뉴욕에 왔을 때 도브는 그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기계를 주제로 하여 1922년에 <기어>를 그렸다.
그는 1925년에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초상>과 <평론가>를 그렸는데 여러 가지 물질들을 조립한 후 색을 칠한 작품들이었다.
노란색을 선호한 그는 버려진 물질들을 조립하여 노란색을 칠하고 명랑하고 시적인 분위기를 창출했다.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화랑에 소속된 예술가들과 작가들을 피카비아에게 소개했다.
대부분 파리로 유학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피카비아와 거침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피카비아는 유럽 모더니즘에 대한 뉴욕 예술가들의 호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활기찬 대도시 뉴욕의 동력주의가 마음에 들었으며, 밤의 황홀한 불빛과 아름다운 교량을 보고 감탄했다.
그가 4월에 뉴욕을 떠나자 스티글리츠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291화랑에 있는 모든 사람이 피카비아를 그리워한다네.
그와 그의 아내는 내가 평생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분명한 사람들이었네.
… 피카비아는 거의 매일 화랑에 오다시피 했는데 우리가 그를 보고 싶어 하듯 그도 이 작은 곳을 그리워할 줄 아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