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은 누워서 작업하기도 했고
다음 주말에 나무스는 한 뭉치의 사진을 들고 폴록을 찾아왔다.
그것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 폴록은 “더 없느냐?”고 물었다.
나무스는 없지만 다음 주말에 다시 와서 또 찍겠다고 말했고, 다음 주말에도, 그리고 다음 주말에도 왔다.
1950년 여름 내내 주말이면 어김없이 나무스가 왔고, 그는 강아지가 주인을 따라다니듯이 폴록을 따라다니면서 “이리로 와서 서라” “저리로 가서 붓을 들고 서 있어라”는 등등 그를 주인공으로 열심히 연출했다.
허버트 매터는 자신이 두 해 전 여름에 알렉산더 캘더를 위해 사진을 찍을 때 폴록이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부러워하던 것을 상기했다.
“그때 잭슨은 사진에 찍히고 싶어 했다. 그는 캘더를 위한 촬영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바라보면서 아주 흥분하고 있었다.”
나무스가 그의 화실로 가서 보면 폴록은 누워서 작업하기도 했고 그림 주위를 돌거나 무릎을 꿇고 작업하기도 했다.
나무스는 폴록의 창조적 과정을 역사적 기록으로 삼아 카메라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1/25의 속도와 1/50의 느린 속도로 약간 흐리게 찍는 기교도 사용했는데, 그러한 시도는 폴록을 마치 배우처럼 보이게 했다.
나무스는 “나는 그의 그림보다는 그의 얼굴을 더 좋아했다”고 나중에 기술했다.
폴록에게는 그해 여름이 분주한 나날들이었다.
1950년에 그가 그린 그림들은 모두 쉰다섯 점이었는데, 은 크기가 220×300㎝였으며 (101)은 274×549㎝나 되었다.
후자의 벽화는 검정색, 흰색, 그리고 황갈색이 파도처럼 굽이치면서 놀라울 정도로 전체가 조화로운 리듬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폴록은 제목을 붙이는 데 심히 혼돈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숫자들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그가 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림은 그린버그가 그림에 나타난 엷은 자주색이 마음에 든다면서 <라벤더 안개 Lavender Mist>(102)라고 부르라고 해서 나중에 제목을 고쳤다.
이 그림은 폴록이 좀더 커다란 크기로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작품이었다.
나무스가 폴록에게 보여준 사진들은 500장이 넘었다.
그중 많은 사진들이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낯익은 사진들이 되었다.
그때 데이비드 스미스가 폴록을 방문했는데 폴록은 그에게 “보아라. 데이비드, 너는 최고의 조각가이고 나는 최고의 화가이다.
다른 화가들은 전부 개똥같고 나와 드 쿠닝만 대단하다”고 말했다.
베티의 말로는 폴록이 스미스와 드 쿠닝의 이름을 거론하기는 했지만 “그의 말 저변에는 모든 예술가들이 다 개똥같고 자신만이 대단하다는 의미가 깔려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잭슨은 자신을 항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첨언했다.
그처럼 폴록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그린버그에 따르면 폴록이 미술관에 가서 대가들의 예술품들을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린버그가 “잭슨에게 루벤스의 풍경화들을 프린트한 그림들을 보여주었더니 그는 그 그림들을 보고나서 “난 이 자보다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폴록에게는 더 이상 루벤스나 피카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페기, 베티, 샘 쿠츠 같은 중개상들 따위의 도움조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폴록은 그들이 자신에게 할 말이 있으면 리를 통해서 말하도록 했다.
폴록은 자신이 위대하다는 망상에 완전히 홀려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주위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