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캐딜락을 탄 폴록
1949년 11월 28일 파슨즈 화랑에서 열린 폴록의 전람회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것은 『라이프』의 보도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낯선 관람자들은 정장을 하고 있었고 유명 메이커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화랑에 온 것이 아니라 좀 더 떨어져 있는 카네기 뮤직홀에 온 것으로 착각한 것처럼 보였다.
드 쿠닝과 함께 온 밀턴 레스닉은 “내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전람회 오프닝 파티에 가면 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날은 내가 전에 보지 못했던 낯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빌(드 쿠닝)에게 ‘왜들 악수를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빌은 ‘둘러봐. 대단한 사람들이 와 있어. 잭슨이 결국 얼음을 깨뜨린 거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주었다.
대단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술품 수집가이며 부자 로이 누버거가 샘 쿠츠 곁에 있었고, 또 다른 수집가 버튼 트레매인, 모마의 책임자 에드가 카우프먼,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의 책임자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그밖에도 여러 명이 더 있었다.
무엇보다도 알프레드 바가 와 있는 걸 보면 폴록이 “얼음을 깨뜨린 것”이 확실했다.
몇 달 전만 해도 폴록의 그림을 의심했는데 바는 『라이프』를 본 후 “잭슨은 이제 현대미술 가족나무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했다.
폴록은 재킷에 타이를 매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서 사람들 가운데 주인공으로 서 있었다.
“잭슨은 마치 사업가인 양 행동했다”고 루벤 카디시는 기억하면서 “예술품 수집가들이 들어오자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리는 전시장 입구에서 『라이프』에 실린 폴록에 관한 기사내용을 프린트한 사본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주었다.
11월 26일 『타임즈』에서 알렉산더 엘리엇은 “잭슨의 그림이 근래 미국미술에서 가장 활기 있는 힘이라면 몇몇 평론가들이 언급한 대로 미술은 나쁜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적었는데 워낙 많은 평론가들이 폴록을 칭찬했으므로 그의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전람회는 12월 10일까지 계속되었고 과거 어느 전람회에서보다 그림이 많이 팔려서 폴록은 풍년의 해를 맞이했다.
어떤 사람은 “『라이프』에 소개된 화가의 그림을 한 점 사는 데 누가 수백 달러를 지불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존 록펠러의 부인 넬슨(Nelson)도 알프레드 바의 안내로 작은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
전람회에 출품한 스물일곱 점 가운데 열여덟 점이 팔렸다.
토니 스미스가 스프링스로 폴록을 방문했을 때 폴록이 『라이프』에 난 자신에 관한 기사를 읽었느냐고 물었고 토니가 읽었다고 대답하자 폴록은 자신이 좋은 차를 몰고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잭슨, 네가 가지고 있는 차도 좋은 차야. 웬 빌어먹을 차 타령이야?”고 토니가 말했다.
“글쎄, 캐딜락이 어떨런지”라고 폴록이 말했다.
토니는 그의 말을 반쯤 농담으로 들었는데 얼마 안 되어서 폴록은 1941년 모델 중고 캐딜락을 40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그것은 컨버터블(뚜껑이 열리는)이었다.
토니는 “잭슨은 여러 면에서 직선적인 미국 소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그도 바랐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토니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폴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그 이상을 바랐다.
『뉴욕 타임즈』는 “칸딘스키, 폴록 그리고 다른 예술가들의 후기 그림들은 …”이라고 적으면서 폴록을 칸딘스키와 같은 수준에 놓았다.
이제 평론가들 가운데 그의 그림을 ‘구운 마카로니’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라고 빈정거리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폴록과 리는 3주 동안 머물 예정으로 뉴욕에 갔다가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을 스프링스에서 떨며 지낼 필요가 없다고 리가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소리오가 무료로 아파트를 제공했으므로 따뜻한 겨울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폴록은 여러 곳에서 초대를 받았다.
8번가에 있는 휘트니 미술관에서 그의 <Number 14, 1949>를 소개하면서 초대했고, 한 달 후 모마에서도 <Number 1, 1948>을 소개하면서 초대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의 초대를 받았는데 리가 오소리오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이제 폴록은 『라이프』가 언급한 대로 “미국미술의 빛나는 새 현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그린버그가 말한 “그의 세대의 가장 훌륭한 화가” 그 이상이었다.
어느 날 폴록은 드 쿠닝과 레스닉에게 자신의 전람회에 소개된 그림들이 어떠했느냐고 물었는데 드 쿠닝은 아무 말이 없었고, 레스닉이 그의 그림 <거미집 밖 Out of the Web>(96)을 지적하면서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마소나잇(Masonite)에 캔버스를 붙여서 갈색 마소나잇이 그림의 중앙에 드러나도록 했나요?”라고 폴록에게 물었다.
폴록이 곧 “커다란 형태 때문”이었다고 말하자 드 쿠닝과 레스닉 두 사람은 영문을 몰라 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폴록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그래, 커다란 형태요”라고 거듭 말했다.
레스닉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말은 커다란 피카소의 것 말이지?”라고 말하니까 폴록은 “그래”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드 쿠닝과 레스닉 두 사람은 폭소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