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미술문화)에서
죽음의 그림자로 얼룩진 뭉크의 생애
에드바르트 뭉크는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 북쪽 헤드마크 지방 뢰텐의 엥겔하우겐 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뭉크는 ‘승려’란 뜻이며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성직자였습니다.
뭉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안은 육군 군위관으로 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오슬로 의무담당관이 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자녀를 스무 명이나 둔 것으로 보아 육체적으로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신체적 건강함을 유산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명랑하고 사교적이었던 어머니는 뭉크가 다섯 살 때 서른 살의 나이로 다섯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독서를 즐겨 하고 동물을 좋아하며 종교적 성향이 강한 아버지는 스무 살 연하의 아내가 사망하자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는 고립된 생활을 자초했고 종교에 깊이 빠져든 후에는 빈민가를 돌보는 의사로 봉사했으므로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때로 자식들을 미친듯이 꾸짖는 아버지는 어린 뭉크에게 삶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훗날 뭉크는 아버지가 거의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냈다고 술회했습니다.
뭉크가 14살 때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던 누나 소피에가 어머니와 같은 병 폐결핵으로 죽었습니다.
뭉크 자신도 류머티즘. 열병, 불면증 등으로 시달렸지만 동생들과는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 자신의 육체적 허약함이 그를 불안하게 했고 아버지의 정신적 방황과 가난으로 인해 삶의 고통이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이런 성장환경은 그로 하여금 죽음의 미학에 흠뻑 빠지게 했습니다.
죽음은 그의 인생에 반려자가 되어 어둡고 소름끼치는 그림들로 나타났습니다.
뭉크가 여머니와 누나의 죽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죽음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인간의 보편적인 것들로 고양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뭉크는 22살 때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을 한 누나 소피에의 모습을 <병든 아이>란 제목으로 그려렸습니다.
어머니가 타계한 후 이모가 집안살림을 도와주었는데 이 작품에서 이모는 누나의 침대 옆에 앉아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뭉크는 26살 때 누나가 창백한 얼굴로 안락의자에 앉아 머리 뒤 베개에 의지한 채 창문으로부터 쏟아지는 햇빛을 받는 장면을 <봄>이란 제목으로 그렸습니다.
봄의 부드러운 햇살이 방안 깊숙히 들어오며 상쾌한 바람이 커튼을 흔들며 방안의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를 창문 밖으로 내모는 장면입니다.
탁자에는 꽃병과 약병이 놓여 있어 투병중임을 말해 줍니다.
서른 살이 넘어서도 <병든 아이>란 제목으로 여러 점 누나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보면 누나의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마음 속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뭉크가 서른두 살 때 그린 <임종>과 <병실에서의 죽음>은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죽음의 미학을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그 밖에도 <죽은 엄마와 아이>, <죽음과 소녀> 등도 죽음에 대한 그의 강박관념이 시각적으로 나타난 작품들입니다.
뭉크는 정신장애를 일으켰고 종종 피해망상증에 시달렸습니다.
여자로부터 쫓긴다는 생각에 시달렸고 친구 중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늘 과음했고 그로 인해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결국 그는 1907년 독일에서 9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발트해 연안의 한 마을에서 휴양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코펜하겐으로 갔는데 개인전을 열기 위해서였고, 그는 코펜하겐 작가들과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때문에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 1908년 10월에는 코펜하겐에 있는 다니엘 야콥슨 박사의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여 전기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8개월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전기치료를 받는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했고 야콥슨 박사와 자화상을 실재 크기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퇴원 후에는 금주가로 변신하여 건강을 돌보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전시가 유럽 각지와 미국 등지에서 개최되었으며 노르웨이 최고의 화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1931년 어머니와 다름 없던 이모 카렌이 사망했고 뭉크의 나이 예순여덟이었지만 다시금 피해망상증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뭉크는 적의를 갖고 주위 사람들을 대했으며 길을 걸을 때는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늘 불안해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집에만 틀어박혀 편지로만 용무를 보는 등 스스로 고독한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뭉크와 스트린드베르크를 연구한 사람은 두 사람의 인생이 매우 유사함을 발견합니다.
뭉크가 스트린드베르크보다 14살 어렸지만 두 사람의 인생 항로는 기묘하게 일치합니다.
두 사람 모두 모국을 떠나 유럽 각지를 유랑하며 외로운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평생 화목한 가정을 꾸미지 못했고 여성에 대해 ‘흡혈귀’관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은 중년에 이르러 피해망상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지독한 고독과 폐쇄적인 생활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스트린드베르크는 문패는 물론 초인종도 달지 않고 방문자를 집안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뭉크는 정도가 더욱 심해 그가 사망한 후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집을 지나다 “뭉크는 부재중!”이라고 쓴 자필 메모를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