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타임』이 선정한 미국 최고의 세 예술가

『타임』지는 미국 최고의 세 예술가로 폴록과 한스 호프만, 그리고 데이비드 스미스를 꼽았다.
스미스는 조각에 전념했고, 호프만은 독일에서 온 유럽 예술가였으므로 폴록만이 유일한 미국화가인 셈인데 그러고보면 그린버그의 예언은 틀림이 없었다.
여기서 폴록과 함께 미국 최고의 예술가로 소개된 스미스(David Smith 1906~65)가 누구인지를 여러분에게 알린다.

스미스는 원래 화가로서 20년대 후반과 30년대 초반에 활약했으며, 그래엄과 가까이 지내면서 모더니즘을 받아들였다.
그는 1931년에 조각에 관심이 생겨 전념했지만 그림도 계속 그렸는데, 그의 동력주의 그림들은 액션 페인팅 화가들의 그림들과 흡사했다.

그는 1906년에 인디애나 주의 디캐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화국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교사였는데 아주 개성이 강하고 엄격한 도덕주의자였다.
스미스는 독립심이 강하여 스스로 돈을 벌면서 공부했다.
1924년에는 오하이오 대학에 입학했으며 여름에는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일했는데 그는 그때 산업형태에 대한 느낌과 공장에서 사용하는 연장과 기계장치들에 대한 지식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뉴욕으로 와서 미래의 아내 도로시를 만났고 그녀의 충고로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입학하여 5년 동안 재학했다.
그래엄은 피카소의 친구인 조각가 훌리오 곤잘레스를 그에게 소개했다.
20세기 철 조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곤잘레스는 그에게 쇠를 용접하여 조각을 제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스미스 부부는 1935년에 파리를 방문하고 그곳에 있던 그래엄과 동행하여 소련을 방문했다.
40년대 중반에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가로 알려졌다.
그가 브론즈로 제작한 작품 <강간 The Rape>(87)은 바퀴 달린 대포로 여인을 협박하는 작품이었는데 대포가 상징하는 바는 공격적인 성(性)과 전쟁이었다.

스미스는 그래엄 외에도 고키, 고틀립, 드 쿠닝, 마더웰, 폴록과 어울렸다.
1961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화가들의 그룹에 속한다.
나의 초기의 친구들은 모두 화가들로서 우리는 함께 회화를 수학했다.
나는 나 자신을 화가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내 작품들은 표면, 색, 그리고 물체를 표면에 적용하는 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53년에 한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추상표현주의 미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피는 에너지이다. 공간도 에너지이다. 에너지가 아닌 것은 없다.
어떤 면적과 패턴을 지칭하는 것은 에너지의 알림이고, 조각적인 것을 조각이 되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하루도 나 자신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보내지는 않는다.
나의 작품들은 나의 존재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는 “나는 조각들을 드로잉처럼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할 정도로 화가·조각가의 미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조각을 제작하기 전에 드로잉을 수없이 그리면서 거의 매일 드로잉으로 자신의 창작의도를 찾았다.
그는 드로잉을 진실한 자아에 가장 직접적이고 근사한 것으로 보았으며 조각을 위한 청사진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의 조각들은 부피와 깊이보다는 선과 형태에서 두드러졌고, 그는 그것들을 “공간에 드로잉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조각들은 내가 분필로 시멘트 바닥에 드로잉한 후 쇠조각들을 산소용접하여 연결시킨다”고 말했는데 마치 재단사가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천조각들을 잘라서 삼차원적으로 꿰매는 방법과 유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193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까지 그가 조각을 위해 드로잉한 그림들은 40권의 스케치북에 가득했다.

1957년에 그의 개인전이 모마에서 열렸고, 그에 관한 기사가 언론에서 자주 보도되었다.
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현하여 인터뷰하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는 스케치북에 드로잉하는 경우가 줄었으며 대신 커다란 종이에 독립된 그림으로 잉크와 붓을 사용하여 그렸다.
그러한 드로잉은 각각 하나의 그림으로 존재하면서 더 이상 조각을 위한 단순한 스케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계란 흰자에 잉크를 섞어 사용하기도 하면서 드로잉의 질을 높였으므로 그것이 조각을 위한 청사진 이상의 것임이 분명해졌다.
1957~58년에 그가 그린 드로잉은 400장이 넘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드로잉 <△∑32-12-57>(89)을 보면 그의 서예적인 붓놀림이 액션 페인팅 화가들의 동력주의의 붓놀림과 근사하며 그가 동양화에도 관심이 컸음을 동시에 알 수 있다.

1960년대에 스테인레스 스틸을 사용하여 제작한 조각들을 보면 그가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적인 느낌이 나도록 드로잉과 같은 형태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차츰 나의 그림들은 나의 조각에서 근본이 되었다. … 나는 어디에서부터 회화가 끝나며, 어디에서부터 조각이 시작되는지 그 한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스미스는 1965년 5월에 자신의 트럭에 치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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