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폴록의 물감 흘리기

여러분이 폴록의 그림들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그가 사용했던 물감 흘리기(dripping) 기교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가 그러한 기교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기 바로 전 그에 관한 남은 이야기를 먼저 한다.

폴록이 파슨즈 화랑에 오는 날이면 베티는 은근히 긴장해야 했다.
그녀는 폴록이 자신에게 말을 걸라치면 그의 안색부터 먼저 살피는 습관이 생겨나 있었다.
혹시라도 그의 심기가 불편함을 안색에서 발견하게 되는 날이면 바짝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잭슨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부끄럼을 타고 거의 말이 없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그는 싸우려고 했다. … 난 달아났다”고 베티는 말했다.

폴록이 그녀의 화랑에 소속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베티는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살필 겸 스프링스로 그를 방문하려고 했다.
뉴먼 부부가 마침 동행하겠다고 해서 그녀는 그들과 함께 뉴먼의 차로 그곳에 갔다.
폴록 부부와 뉴먼 부부 그리고 베티는 거실에 앉았다.
그날 뉴먼은 일제 연필들을 선물로 가져갔으며, 베티는 폴록이 그 연필로 드로잉하는 것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폴록은 처음에는 잘 그렸으나 연필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곧 연필이 부러졌다.
다른 연필로 그리는데 또 부러지고 다시 연필을 쥐고 그렸지만 역시 부러지자 ‘빌어먹을 연필’이라고 화를 내며 욕지거리를 했다.
“잭슨은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는 지나쳤다. 만일 그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미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그날 이후 베티가 소감을 전했다.

1947년 폴록은 파슨즈 화랑에서 처음으로 열릴 전람회를 위해 8월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가을까지 그는 그림에만 전념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찬 바람이 헛간 화실 안으로 스며들었으므로 10월부터 난로에 불을 지펴야 했다.
리는 그가 난로를 사용하자 부주의로 불이나 나지 않을까 은근히 염려했다.
헛간 바닥은 나무로 된 데다가 작았으므로 그런 염려를 할 만도 했다.
더욱이 폴록은 유화 물감들을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놓았는데 그것들은 화염물질이므로 화실 내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폴록은 열대여섯 점을 그려서 그것들을 벽에 기대놓거나 걸어두기도 했다.
리는 그것들을 벽장 안에 넣어두라고 했지만 폴록은 자신이 바라볼 수 있게 펼쳐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주장은 타당성이 있었는데 작가들은 자신의 과거의 아이디어가 현재의 아이디어를 보완해주거나 또는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그림을 바라봄으로써 자화자찬하는 나르시시즘도 즐길 수가 있었다.
리도 자신의 제안이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연신 바라보다가 싫증이 나거나 창조자로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면 어느 날 그것들을 폴록처럼 난로 속에 처넣거나 칼로 난도질해버린다.
칼로 자신의 실패한 그림들을 찢다가 미학적 경험을 했던 루치오 폰타나는 그때부터 고의로 캔버스를 찢어서 작품으로 내놓았으니 미학적 경험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고 일어날 수 있음과 과오는 곧 창조의 시작이기도 함을 새삼 알려준 예라 하겠다.
드 쿠닝은 “퍽 자주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망친다.
폴 세잔이 그랬고 피카소도 입체주의 그림들을 망쳤다.
폴록도 많은 그림들을 망쳤다”고 말했다.

폴록은 여러 가지 물감들을 실험했다.
그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유화 물감 외에도 상업용 에나멜 페인트, 배관공들이 사용하는 알루미늄 페인트, 그리고 가정용 페인트도 썼다.
그는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마치 무대에서 행위하듯이 그림을 그렸으므로 액션 페인팅은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는 유화 물감을 묽게 타서는 깡통에 붓고 막대기로 물감을 젓다가는 허공에 휘휘 저으면서 물감이 캔버스에 떨어지게 했다.
그러면 캔버스에는 아주 가는 선들이 강줄기처럼 나타났으며 물감이 막대기에서 거의 흘러내렸을 때에는 더욱 가는 선들이 나타났다.
그는 이런 방법을 반복했다.
그가 물감을 천천히 떨어뜨릴 때면 강줄기는 불어났으며, 속도를 가하면 강줄기는 길어졌고, 캔버스 가까이 흘린 물감은 부드러운 선이 되었다.
그가 팔을 휘휘 젓게 되면 거친 동그라미들이 생겼으며, 물감이 묽을 때에는 동그라미들이 멀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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