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피카비아 아내에게 품은 뒤샹의 연정
애인 마리 로렌싱을 떠나보내고, 피카소를 멀리하기 시작한 아폴리네르는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필요했다.
그는 피카비아를 자주 만났는데 그의 사내다운 점이 마음에 들었다.
뒤샹이 뮌헨이 있는 동안 아폴리네르는 혼자 피카비아를 독점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셨으며, 밤새 대화하고 아편을 함께 피웠으며, 피카비아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파리 시가를 빠른 속력으로 누볐다.
피카비아는 자동차를 여러 대 가지고 있었고, 돈을 물 쓰듯 했다.
이 시기 피카비아는 육안으로 분별할 수 있는 사물의 색보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감성적인 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하늘을 빨간색으로 땅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표현주의 방법을 즐겼다.
그러한 그의 그림은 만화경처럼 보였다.
그는 말했다.
“나의 그림에서 주관적인 표현은 제목에 있으며, 그림은 객체일 뿐이다.
하지만 객체는 객체임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이기도 한 이유는 제목을 나타내는 판토마임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객체가 인간의 심장과도 같은 잠재적인 요소를 알 수 있는 방법을 가장 잘 제시해준다.”
피카비아는 아폴리네르를 만나고부터 부쩍 추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가브리엘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이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뮌헨에서 돌아온 후 뒤샹은 1912년 10월 20일 아폴리네르와 함께 피카비아의 차를 타고 스위스 국경 근처에 있는 주라로 갔다.
그곳 산 정상에 있는 작은 동네 에티발에는 피카비아의 장모가 살고 있었으며, 피카비아의 아내 가브리엘도 그때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피카비아가 12시간 동안 운전하는 동안 아폴리네르와 뒤샹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편안하게 왔지만 피카비아는 폭우를 뚫고 달리느라 여러 차례 노선 밖으로 위험하게 차를 몰았다.
밤늦게 에티발에 도착한 세 사람을 가브리엘과 장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묵었다. 가브리엘의 어머니 미세스 부페는 누구와도 대화할 줄 아는 사교적인 여인으로 훌륭한 가문 출신답게 예를 갖추었다.
미세스 부페는 유명한 식물학자의 손녀딸로 할아버지는 라마르티느, 샤토브리앙, 마담 레카미에르의 친구였다.
가브리엘의 기억에 의하면 아폴리네르는 미세스 부페에게 그곳 동네 존느에 관해 혹은 18세기 조상들에 관해 물으면서 자기가 18세기의 지성에 관해 충분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미세스 부페는 사위의 친구가 자랑스러운 자신의 집안에 관해 묻는 것에 의기양양해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폴리네르와 대화했다.
비가 자주 왔으므로 그들은 벽난로 앞에서 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었고, 미세스 부페는 할머니가 예전에 그랬듯이 옛 이야기들을 사위와 사위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뒤샹은 7살 연상인 가브리엘에게 연정을 품었다.
그러한 그를 그녀는 친절히 대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그의 애틋한 사랑을 은근히 부추겼다.
뒤샹은 파리의 찰스 프로크에 있는 피카비아의 커다란 아파트에 자주 가서 밤이 깊도록 그들 부부와 함께 지냈으므로 가브리엘은 뒤샹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아름다운 몸매에 지성을 갖춘 가브리엘은 피카비아와 결혼하면서 음악을 포기할 것을 약속했다.
가브리엘은 뒤샹에 관해 회상했다.
“마르셀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 그는 시골사람으로 존경하는 형들에게 너무 집착해 있었고, 혼자 속으로만 혁명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답니다.
… 피카비아가 그에게 준 영향은 대단했고, 저의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 제가 마르셀을 그의 가족으로부터 끌어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