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 기욤 아폴리네르의 감옥행

이 시기 기욤 아폴리네르는 입체주의를 가장 잘 옹호하는 평론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뒤샹은 퓌토 예술가들의 그룹에서 그를 만났는데 재능 있는 시인임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아폴리네르는 황금 섹션의 그룹전을 관람한 후 뒤샹의 그림에는 그다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다만 “낯선 드로잉”이라고만 적었다.

아폴리네르는 가정교사, 은행 서기, 언론인, 사진사 일을 하다가 1910년부터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의 그림을 미학적으로 옹호하면서 평론가로 부상했으며 피카소를 만난 것은 1903년이었다.
그는 퓌토에 왔지만 그곳 예술가들과 자주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그들을 만나는 것을 피카소와 브라크에게 미안한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브라크는 아폴리네르의 미술에 대한 식견을 별로 신용하지 않았다.
“아폴리네르는 재능 있는 시인이지만 미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미술에 대한 그의 지식은 우리를 통해서 생긴 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아폴리네르는 1907년 벨기에인 게리 피에르를 비서로 채용했는데, 피에르는 훔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였다.
하루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돌로 된 작은 조각 두 점을 코트 안에 넣어 훔쳐오기도 했다.
피카소의 일대기를 쓴 작가 존 리처드슨에 의하면 피카소는 루브르에 새로 전시된 기원전 5, 6세기경의 고대 이베리아인의 돌조각에 대단한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피에르가 훔쳐온 이베리아인 조각 두 점을 보자 피카소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한다.
피카소는 피에르에게 돈을 주고 그것들을 샀다.
그가 1907년에 그린 그의 대표작이자 20세기의 대표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등장하는 두 여인의 얼굴이 이베리아인의 조각 모습과 유사해서 피에르에게서 산 돌조각과 관련 있다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었다.

피에르는 미국으로 가서 4년 동안 지내다가 1911년 봄 아주 비싼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파리에 돌아왔다.
그의 돈 씀씀이는 헤펐으며, 많은 돈을 경마에 탕진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폴리네르는 그에게 돈을 꾸어주기도 하고, 잠자리까지 제공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피에르는 아폴리네르에게 진 빚도 갚을 겸 돈이 필요해서 다시 루브르로 가서 이베리아인의 돌조각을 훔쳐왔다.
결국 아폴리네르는 1911년 8월 21일에 그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내쫓았다.
피에르가 아폴리네르로부터 주문을 받고 돌조각을 훔쳤는지, 아니면 그의 의중을 파악하고 훔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에르는 아폴리네르에게 주려고 그것을 훔친 것이다.

그날 파리의 모든 신문에서는 <모나리자>가 루브르에서 도난당했음을 일제히 보도했다.
범인은 루브르에 고용된 빈센조 페루지아였다.
그는 <모나리자>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그 그림을 벽에서 떼어 계단으로 가져간 후 그곳에서 캔버스를 액자로부터 분리했다.
그는 <모나리자>를 둘둘 말아 코트 안에 넣고 유유히 루브르를 빠져 나왔다.
페루지아는 2년 후 <모나리자>를 구입할 사람을 찾다가 50만 리라에 구입하겠다는 플로렌스인의 제의를 받았다.
페루지아는 그때 쇠고랑을 찼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나리자>는 조금도 상한 데 없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1911년 8월로 돌아와 이야기를 계속하면,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사실이 보도된 후 『파리 저널』은 그것을 되돌려주는 사람에게는 신분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거액을 보상하겠다고 제의했다.
피에르는 꾀가 나서 아폴리네르의 아파트에 있는 이베리아인의 조각을 가져다 『파리 저널』에 건네주고 돈을 받은 후 루브르의 안전상태가 매우 허술하다고 말해주었다.
『파리 저널』은 약속대로 피에르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이베리아인의 조각을 루브르에 돌려주었다.
이 사실을 안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는 피카소가 피에르로부터 과거에 구입한 이베리아인의 조각 두 점 때문에 불안해했다.
아폴리네르는 과거의 비행이 탄로가 날 것을 염려하여 피에르에게 160프랑을 주면서 기차를 타고 마르세이유로 도망치라고 권했다.
그런 후 아폴리네르는 조각 두 점을 가방에 넣어 센 강에 던져버리려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다시 그 조각을 『파리 저널』로 가지고 가서 자신의 신분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누가 경찰에 신고했는지 9월 7일에 경찰관이 아폴리네르의 아파트를 뒤졌고 아파트에서 피에르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경찰관은 아폴리네르를 체포한 후 그가 <모나리자>를 훔친 자와 공모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상테 구치소에 수감했다.

아폴리네르는 구치소에 엿새 동안 감금되었는데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경찰관은 피카소를 의심하고 심문하기 위해 연행했다.
심문관은 아폴리네르를 피카소가 있는 방으로 데려온 후 아폴리네르를 아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겁에 질린 피카소는 창백한 얼굴로 평생 수치스럽게 여길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난 이 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훔친 조각품인 줄 알면서도 구입한 피카소는 법에 따라 스페인으로 추방되어야 마땅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아폴리네르는 결국 풀려났지만 그때부터 피카소를 비겁한 놈으로 여겼다.
두 사람의 미학적 우정은 결국 금이 갔다.
그 후 아폴리네르는 퓌토의 예술가들과 좀 더 가까이하면서 마르셀의 형들과 우정을 나누었고, 황금 섹션 전시회를 관람한 후 그들의 작품에 관한 글도 썼다.
이는 피카소로부터 배신당한 미학적 화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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