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얼룩진 예술 Art Brut ’의 화가 장 뒤비페

장 뒤비페(Jean Dubuffet 1901~85)는 이차대전 이후 유럽에 출현한 몇몇 두드러진 예술가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영향은 유럽의 화가들뿐 아니라 미국 화가들에게도 미치고 있었다.
그는 교육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화가들, 어린아이, 정신병자, 정신박약아들의 그림을 연구했다.
그가 주로 영향을 받은 화가는 파울 클레였는데 클레는 이미 어린아이들과 정신박약아들의 그림들을 연구하고서 그들의 그림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들보다 더욱 훌륭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뒤비페는 1901년 2월 28일에 조르주 브라크와 라울 뒤피의 고향이며 조그만 항구가 있는 르 아브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포도주 상인이었다.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그는 르 아브르에 있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했고, 열일곱 살 때 파리로 가서 줄리앙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6개월 동안 재학한 후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이 형편없다고 불평하면서 자신의 화실을 열고 독학했다.
1930년에는 아버지가 유업으로 남겨준 사업을 더욱 확장하여 도매상으로 개업했다.
그의 사업적 아이디어는 적중했으므로 그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1936년 그는 첫 아내와 이혼하고 같은 해에 에밀리 칼루(Emillie Carlu)를 만나 이듬해에 그녀와 결혼했다.

뒤비페는 어린아이들의 그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미친 듯 보이게 그리는 그들의 그림들을 자신은 미학적으로 순진하게 변형시켰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그는 ‘아르 브뤼(Art Brut: 얼룩진 예술)’라고 불렀다.
여러분은 아르 브뤼와 추상표현주의는 같은 것이지만 전자는 이미지를 조금 남기는 회화로서 프랑스인의 방법이라고만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뒤비페는 늘 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그림에 프래스터, 풀, 퍼티를 사용하면서 그 위에 갈겨 쓰듯이, 또 낡은 벽에 써 있는 낙서들처럼 서툴어 보이게 그렸다.
뒤비페는 아이들의 낙서에서 인간의 원천적인 표현방법을 발견했으며, 그래서 순진한 느낌을 주는 아이들의 그림에서 카타르시스적인 미학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것들을 반개성적으로, 그것들이 일반적으로 나타난 모습들을 그려서 인간적 모습의 요소들이 되게 했다.
나는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어떤 기계적인 방법은 상상을 휘저었으며, 초상의 힘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는 기괴한 인간의 모습들이 야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 복잡하여 마치 역사시대 이전의 모습들처럼 느껴지도록 그려냈다.
그가 회화적 기교들을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들에서는 자아의식이 노출되었다.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방법, 즉 물감과 모래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우리는 전통주의와 단절하지 못했던 야수파와 입체주의를 이제 버림으로써 과거를 꼭 부수어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그림들이 뉴욕에서 소개되었고, 폴록도 그의 그림들을 보아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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